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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Nov 04. 2020

조선시대 교육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깨우쳐준다

오래전에 읽은《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라는 책을 다시 펴 들었다. 김찬웅이 지은 것으로 조선 시대 이문건의 ‘양아록’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 놓은 책이다. 500년 전의 육아일기가 조선 시대의 삶을 말한다. ‘양아록’은 16세기 조선 중기 묵재 이문건(1494~1567)이 기록한 육아일기이다. 손자인 이수봉이 성장 발달하는 모습을 기록하였다. 이문건은 조선 중기 중종 때부터 명종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로, 승정원 좌부승지를 지내기도 한 사대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문장으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러나 을사사화로 조카는 효수를 당하고 자신은 귀양을 가는 처지가 되었다. ‘양아록’은 이문건이 유배지에서 손자를 기르면서 체험한 일들을 시와 산문, 한문학의 일반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500년 전에 육아일기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특이한 일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과 엄한 교육 방법, 여종의 아이 젖 주기, 천연두, 그네 놀이, 아이들의 음주 문화 등 조선 시대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그는 장애인인 아들이 자식을 얻은 기쁨을 안고 손자의 육아일기를 기록하였다.

이문건은 아들 온이 7세에 열병을 앓아 바보가 되었고, 딸은 간질병으로 죽고, 다른 아이들도 낳자마자 죽었다. 바보 아들 온이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았는데 그가 ‘양아록’의 주인공인 수봉이다. 손녀딸만 낳다가 얻은 귀한 손자였으므로 기대가 컸다. 아들 온이 2대 독자인 손자를 낳은 것은 이문건이 58세의 유배 길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가 일어서고, 이가 나고 걷기 시작하는 모습,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문건은 손자의 이 모든 행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귀양살이에서 벗할 동료도 적고, 아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고독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기록한 육아일기를 손자가 장성한 후에 보게 되면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손자가 태어났을 때 그 탯줄을 잘라 싸매서 다음 날 깨끗이 씻게 한 뒤 황색 사기 항아리에 담아 며칠 후 조선의 왕들이 그 태를 많이 묻었다고 하는 신석산 서쪽 마을 태봉 아래에 묻도록 했다. 여종 돌금에게 손자를 보살피도록 하였고, 손자의 앞날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개명하였다. 9개월이 지나자 윗니가 생겼고, 11개월에 처음 일어서고, 두 손으로 다른 물건을 잡고 양 발로 쪼그리고 앉았다. 한 달 동안 그런 행동을 하다 스스로 오금을 펴고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처음 1년 동안의 기록이 가장 많다. 돌잔치는 그 아이가 살아남았음을 축하하는 잔치라고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냈다. 이문건은 ‘손자가 커 가는 것을 보니 내가 늙어 가는 것을 잊었다’고 하였다.


손자가 6세 되던 해에 이문건과 손자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가장 행복했다. 할아버지가 밖에 나갔을 때 날이 저물면 슬퍼하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 졸려도 자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늦게 돌아온다고 원망한다. 집에 들어오면 문 앞에서 기쁘게 맞이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진정 더불어 사는 것이고 한 뿌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일도 많았다. 5세 때에는 숫돌을 가지고 놀다가 엄지손가락의 손톱 가운데를 찍어서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손자가 전염병에 걸려 아플 때 죽을 먹였다. 똥 누이는 일도 일일이 할아버지가 기쁜 마음으로 돌봐주었다. 수봉은 여섯 살까지 이질, 학질, 안질, 더위 먹음, 천연두 등의 병으로 고생하고 몸은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갔다. 손자에게 천연두가 발병했을 때, 이틀 밤낮을 꼬박 새워 가며 손자를 간호했다. 아들과 딸을 천연두로 잃은 경험이 더 노심초사하게 했다. 열이 불덩이 같고 종기는 수도 없이 곪았다. 눕혀 놓아도 고통스러워하고 안아주어도 아파했다. 아프다고 호소를 해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이틀 밤낮을 틈틈이 미음을 먹이고 어루만져주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천연두는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천연두를 겨우 극복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마 자국이 사투의 흔적으로 남았다.


사대부 가문의 아이로 태어난 수봉은 학문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6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7세 되던 해에 아들 온이 세상을 떠났다. 손자 수봉을 돌보는 일은 모두 이문건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수봉은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업을 소홀히 하여 꾸중을 듣고도 동문 밖으로 나가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럴 때마다 여종을 보내 불러들이게 했다. 뒤쪽 사립문 밖에 와서 끌어당겨도 들어오지 않았다. 불손함에 화가 나서 들어올 때 그 머리통을 다섯 번 손으로 때렸다. 들어와 창가에 서게 하고 손바닥으로 볼기를 네 번 때렸다. 엎드려 우니 곧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때리고 난 후의 그의 심정은 애통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것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 후회한다.


10세 되던 해에는 그네 놀이에 정신이 팔린 손자의 종아리를 쳤다. 13세부터 손자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만취해서 돌아오던 날 이문건은 가족이 모두 손자를 때리게 했다. 누이와 할머니가 열 대씩 때리게 했고, 자신은 스무 대도 넘게 매를 때렸다. 하지만 손자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손자가 14세 되던 해에 이문건은 늙은이가 아들 없이 손자를 의지하는데 손자가 지나치게 술을 탐하여 번번이 토하면서 뉘우칠 줄 모른다고 했다. 이후에도 할아버지와 손자의 갈등은 커졌다. 아마 요즈음에 말하는 사춘기였던 것 같다.

이문건은 손자에게 자주 매를 대는 자신에 대해 늙은이의 포악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서로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 같다며 손자에 대한 야속함과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였다. 손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남은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노옹조노탄’을 끝으로 이문건은 더 이상 ‘양아록’을 쓰지 않았다. 손자가 이제 장성하여, 더 이상 품을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양아록’은 16세까지만 기록하였다.


결국 이수봉은 할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과거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여 칭송을 받았고, 43세에 죽었다.    


가정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가정교육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참된 가정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를 양육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이를 믿고 지극한 사랑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관심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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