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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Nov 16. 2020

흘러간 소리

가만히 눈 감으면 그리운 소리가 들린다

움직이는 모든 사물에는 소리가 있다. 거친 마찰음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가 있고, 자연의 소리가 있는가 하면 문명의 소리도 있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달콤한 소리가 있는가 하면 추억을 되살리는 아련한 소리도 있다.  


그 옛날 흰 눈이 쌓인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교회가 있었고 교회의 가장 높은 곳에 종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시각을 알리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그곳에서 울렸다. 고요한 마을에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면 마음도 평화로웠다. 근대화가 되면서 여기저기 교회가 세워지고 실제 종소리와 녹음된 종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그 종소리가 교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음공해로 느껴졌다. 그런 이유로 1990년 ‘소음진동규제법’이 제정되어 교회의 종소리가 사라졌다.


어린 시절 새벽녘에 커다란 물독에서 물을 푸는 소리로 아침을 열었고, 솔가지 타는 소리가 아궁이에 가득했다. 조금 덜 마른 장작이 탈 때는 송진이 나오며 아름다운 불빛을 만드는 소리가 났다. 윤기가 반질거리는 가마솥에 따뜻한 물이 있었고, 한 바가지씩 퍼서 세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마솥 뚜껑을 여닫는 소리에 아침이 익어가고, 사랑채의 아궁이에서 소여물 끓는 소리에 온 식구들이 깨어났다. 여물을 끓이던 가마솥에서 바가지로 여물을 긁어내는 소리가 더 컸다. 부엌에서 조리로 쌀을 일궈내는 소리, 장독대로 된장 고추장 푸러 오가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된장 풀어서 시래깃국 끓이는 구수한 소리, 그릇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구정물을 양동이에 쏟는 소리, 도마질 소리. 여물통에 소죽을 부으면 소가 허연 김을 뿜어가며 여물을 먹는 소리, 새벽을 깨우는 수탉 소리가 고향마을의 활기찬 소리였다.


지난 삶을 떠올리는 농촌마을의 일손을 따라 들리던 그리운 소리로는 쟁기질 소리, 소달구지 소리, 지게 목 받치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 도리깨질 소리, 새 쫓는 소리, 발로 밟아 돌리는 재래식 탈곡기 소리가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소리로는 뻐꾸기 소리, 맹꽁이 우는 소리, 황소의 느릿한 울음소리. 제비 새끼들의 입 벌리며 내는 소리, 엿장수 가위질 소리, 소쩍새 소리, 매미소리 등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부르던 소리, 귀뚜라미 소리, 모내기한 논에서 나는 개구리울음소리, 부엉이 울음소리, 귀뚜라미 합창소리,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 자정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겨울철이 되면 빨래 방망이 소리, 문풍지 떨리는 소리, 담뱃대 터는 소리, 처마 밑에 길게 늘어진 고드름이 떨어지는 소리, 달 밝은 겨울밤에 멀리서 들려오던 하모니카 소리가 있었다.


현대를 사는 귀가 밝은 노인은 현대인의 삶이 담긴 소리를 잘 듣는다. 그는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 차들이 지나가며 내는 경적소리, 비바람 소리, 안내 방송, 어디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고물을 구입한다고 선전하는 스피커 소리, 놀이터 아이들 소리, 택배 아저씨가 누르는 벨소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 밤낮으로 시끄럽게 우는 매미소리도 잘 듣는다. 그는 밤이 깊으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 편의점 밖의 간이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소리, 폭주족의 오토바이 소리, 구급차 출동소리, 새벽을 알리는 공원의 새소리도 잘 기억한다. 이런 소리도 우리 귀에 익숙해지면 목마름만 남기며 사라지고 잊힐 것이며 세월이 더 흐르면 그리운 소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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