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이 새어 나오던 고향집이 그립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그의 저서 《귀소본능》에서 집이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산에 사는 길짐승도 들어갈 집이 있고, 날짐승도 쉴 수 있는 집을 찾는 시간이 따로 있다. 사람도 집을 소유하고 밤이면 집으로 향하는 귀소성이 있어 자기 집으로 향한다. 집은 그리움이 만나는 곳이고 헤어졌던 시간만큼이나 보고 싶은 곳이다. 집은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곳이고 행복을 나누는 곳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기다리시던 포근했던 집을 찾던 때가 있었다. 어디에 있어도 어린 시절에 집으로 가는 길은 가까웠다. 집 주변만 돌다가 저녁노을이 지고 집으로 향할 때면 너무 늦어 꾸중 들을까 봐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집 나가 들은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 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문풍지 틈으로 찬바람이 드나들고 가물거리던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하시던 어머니께서 듣고 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셨다. 집집마다 밖에서 놀다 돌아온 아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였다.
그들이 자라 초등학교로 나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을 무렵, 학교에서 무거운 책보를 등에 메고 집에 들어서는 길은 찬밥 덩어리가 기다리고 있어 미리 배가 불렀다. 중학교 시절에 소를 몰고 땅거미가 내려앉던 길을 따라 집으로 갈 때면 소가 앞장서서 외양간으로 먼저 들어갔다.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 집에서 하루를 묵고 집에 가던 날은 방이 좁고 더 단순해 보였다. 대학 다닐 때에 객지에서 하숙하다 고향집으로 가는 길은 고향 냄새가 더 좋았다.
결혼 후에 찾아가던 새로운 작은 집은 책임감이 따라왔다. 그 집에 갈 때면 가장이라는 짐을 하나 더 가지고 다녔다. 마당 앞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어 어깨가 더 무거웠다.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잘도 비키며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철에도 자전거를 타고 미끄러운 길을 오르내리며 출퇴근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날이 저물어 집에 돌아올 때면 짧은 해가 더욱 짧았다. 중년에 집으로 갈 때면 딸과 아들도 함께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 자동차가 집으로 대려다 주었다. 그 길은 고향집을 가는 의미와 사뭇 달랐다.
나이 들어 귀가하는 길은 도로 혼자였고, 그 집은 구닥다리 살림살이만 기다리고 있었다. 옛 집에 갈 때면 어린 시절에 걷던 길이 포장되어 그림자만 있었고 그 길은 나만의 길이고 생의 존재였으며 혼자 가도 둘이었다. 고향마을은 갈수록 친구도 사라지고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어느 날부터 옛집에 가면 내가 집이 되고 명절에 선물을 들고 고향 집으로 향하면 묵은 가족들이 모여 지난 삶을 재현했다. 옛집에 대한 추억은 나와 아내의 젊은 날이었고 명절에 들뜬 마음으로 옛집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무엇을 남겨놓고 온 기분이었다. 나이 들면서 어디를 가도 돌아갈 집이 있기에 절실함이 덜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걷다 지쳐 돌아보니 참 많이도 걸었다. 멀리 갈수록 되돌아가는 길은 더 멀었다. 이제는 내가 길이 되어 길 위를 걷노라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눈길이 다가와 말한다.
눈 쌓인 산길을 걸어보세요.
눈 위에 나이가 찍혔습니다.
나뭇가지에 어린 시절이 걸려 있네요.
조심조심 기어오르면 고향길이 보입니다.
떠난 이의 발자국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