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는 허수아비 세상을 산다
어린 시절, 등하교 길에 우리를 반겨주던 허수아비가 있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우리의 영원한 친구였다. 어느 농부가 짚으로 인형을 만든 후에 여러 헝겊 조각으로 덕지덕지 꿰맨 누더기 한복을 입히고 머리에는 중절모자를 씌워 논 한가운데 세워 놓았다. 이 모습은 공간의 풍경이 아니라 세월의 풍경이었다.
허수아비를 만든 농부가 농담조로 말했다.
“허수아비야! 참새 떼를 쫓으라고 이 논에 너를 새운다. 잘 부탁한다.”
농부는 헛기침을 한 번하고 허수아비 곁을 떠났다. 허수아비는 논에 혼자 남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들판은 적막하였다. 참새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다.
허수아비가 혼자 말했다.
“농부님! 나 혼자 남겨두고 무정하게 가셨습니까? 혼자 있으니 외롭습니다.”
허수아비는 자기의 초라한 복장을 보며 농부를 원망하였다.
“이런 누더기 옷을 입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양손을 벌리고 참새만 지키고 있어야 하나요.”
참새들에게 곡식을 뺏기지 않으려고 지키고 있지만 가을 추수가 끝나면 허수아비의 삶도 끝나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더 안타까웠다. 한낮에 양팔을 벌리고 한 곳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비가 내리는 밤을 지새울 때는 더욱 외로운 일이었다.
화창한 아침이 밝아오자 허수아비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에게 사뭇 다른 말을 하였다.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푸른 하늘과 들판에 익어가는 모든 만물을 내가 보살핍니다.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허수아비는 세상사 모든 일이 때와 보는 각도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허수아비는 어두운 밤을 지내고 밝고 맑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행복이 늘 가까운 자기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