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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Nov 19. 2020

어떤 어르신의 나들이

어르신의  나들이를 끝내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날처럼 천변을 걷다가 수목원으로 들어섰다. 열대식물원 앞을 지나는데 노인요양센터라고 쓴 승합차에서 어르신들이 내리신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인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세가 모두 80세는 넘으신 것 같다. 인솔하시는 분이 유치원 아이들처럼 한 분씩 손을 잡고 안내한다. 한 할머니는 유모차를 붙잡고 의지하며 구부리고 걷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불안하다. 인솔자들이 더 긴장하고 어르신들이 줄을 지어 열대식물원 안으로 들어선다. 그중 건강상태가 좋아 보이는 어르신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가 또렷하고 말하고 싶은 내색이 역력하다. 나는 무엇에 끌린 것 같이 그분들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며 말을 건넸다.


“소풍 나오셨네요.”

“요양원에서 왔어요.”

“열대식물원은 따뜻해서 좋지요.”

“구경 나오니 좋네요.”

“요양원에서 생활하신 지 얼마나 되었어요?”

“1년이요. 요양병원의 세월은 그날이 그날이지요.”

"옆에 어르신들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지요?”

“그래도 불편해요.”

“요양병원에 계시려면 돈도 많이 들지요?”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긴 의자에 앉아 어르신의 한풀이가 이어진다.

“지난날에 손녀들과 공원에도 갔었는데⋯⋯.”

“손녀들이 있었군요.”

“지금은 미국에⋯⋯.”

“가족들이 미국에 계세요.”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도 안 계시는군요.”

“아내가 있을 때가 좋았지⋯⋯.”

“네⋯⋯. 그렇군요.”

“지금은 혼자⋯⋯.”

작은 소리로 사연을 한참 말하고는 다시 평온한 얼굴이다. 젊은 날에 좋은 직장에 근무했다는 그는 깔끔하면서 인자한 모습이다. 열대식물원 안에는 유치원에서 나온 아이들과 인솔교사들이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쪽은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하루가 앙증맞고 다른 한쪽은 인생을 마무리하는 움직임이 느린 어르신들의 하루가 무겁다. 그 어르신들은 젊은 날에 이런 곳으로 인솔자를 따라 오리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들이를 마친 그 어르신들이 인솔자의 도움을 받으며 승합차에 오르고 출입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할아버지의 소풍이 끝나는 소리였다. 그 할아버지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풍광을 눈에 담고 다시 요양원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 인생길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노년기에는 삶의 모든 희로애락에서 한 발짝 물러나 지나간 삶을 관조하고 감정의 응어리를 푼다. 겉으로는 행복하고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말 못 할 괴로움과 후회의 감정이 존재한다. 노인들이 자주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와 화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심리적 과제를 푸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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