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는 장량이 도피하여 살던 곳에서 유래하여, 장 씨 가계들이 살던 곳이라고 하는데, 군사들이 그를 잡으려 했으나 깊은 산세에 굴복하고, 타협하여 장량을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곳이다.
장가계는 ‘人生不到張家界 인생 부도 장가계, 百歲豈能稱老翁 백세기능칭로옹 즉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장가계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릉원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1,334m이고, 풍경구의 면적이 264㎢에 달하며 크게 장가계의 국가 삼림공원, 츠리현의 삭계곡 풍경구, 쌍즈현의 천자산 풍경구 등 세 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인접해 있었다. 중국 후난 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국가 삼림공원 및 여행 특정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20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산장에서 황석채로 가는 계곡에서 올려다본 풍경은 지나는 사람을 압도한다. 장가계의 절정은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 정문에서 케이블카 전용 버스를 타고 5분쯤 올라간 후 케이블카에 올라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단애와 기암 연봉! 그것은 동양 산수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정상에 올라서자 눈을 들어 한 곳을 응시하면 한 폭의 산수화 같고, 빙 둘러보면 그대로 병풍이다. 도연명이 노래한 무릉도원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끝없이 웅장하여 중국 여행의 백미라고 말하는 것 같다. 깎아 놓은 것 같은 기암괴석들로 둘러싸인 산수가 가히 감탄사를 절로 만들어 내는 신비롭다. 천자산과 황석채 등의 산수풍경. 금편 계곡, 십리화랑 길에 펼쳐진 자연 속에 동화해 가는 곳, 아침 안갯속 보봉호에서 듣던 토가족 여인의 전통 노래 한 가락,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다.
많이 걸어서 힘들면 이용할 수 있는 가마꾼들이 있어 돈의 위력을 자랑하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콧대 높은 중국인들을 여지없이 망가뜨리는 곳이다. 천자산 정상에서 군밤을 파는 원주민들의 손길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높은 곳에 올라가 발아래에 펼쳐지는 돌기둥을 본다. 저 돌기둥을 도끼로 찍고 칼로 벤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모노레일을 타고 40분간 양쪽에 펼쳐지는 바위 계곡 ‘십리화랑’이 있고, 약초 캐는 노인 바위가 있다. 일정을 마치기 전에 발 마사지를 받았다. 약초, 쑥을 넣은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후 발바닥 지압부터 어깨, 머리 등을 마사지해주는데 피로가 풀렸다. 발 마사지를 해주는 아이들은 1년 반을 배웠다고 하는데 모두 20대 초반이었다. 순진하고 밝은 얼굴이 애틋하다.
점심 식사 장소는 북한 식당이다. 개량 한복 차림의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반갑고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식사 중에 우리 일행을 따라다니며 그 일정을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에 담은 토가족 여성이 테이프를 틀어주었다. 관광버스에 기념 촬영하는 여성을 의무적으로 태우게 되어 있다. 천문산, 천문동, 99개 버스 고갯길, 999개의 계단, 천 길 절벽에 놓인 등산로 등이 새로운 장면이다. 힘차게 변화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장가계에만 상주하는 가이드가 2,000명이라고 하니 관광산업이 얼마나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장가계를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대부분 가이드는 우리나라 교포 2세나 3세다. 그들은 우리나라 민족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번에 만난 가이드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세무직으로 근무하다가 가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자기는 적성에 맞고 수입도 좋다고 한다. 그녀는 가이드끼리 결혼을 하였고 매일 만나는 여행객들과의 경험담을 글로 써서 기록을 남긴다고 하였다. 그녀는 부부가 맞벌이하여 1년만 열심히 벌면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가이드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고, 한글을 알아야 가이드가 될 수 있으니 한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곳이다.
천문산은 해발 1.518m로 장가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16 봉우리가 있다. 케이블카로 천문산에 오르는데 민가의 생활상을 아주 가깝게 볼 수 있는 주거지역의 상공을 지나가기도 하였다. 험한 계곡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올라 산허리를 돌았다. 그 기이함과 절묘함에 자연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절묘하게 속살을 드러낸 바위산에 소나무가 바위에 제멋대로 자생하여 자연 분재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천문산은 장가계 시내에서 8km 떨어져 있는 산으로 사방이 모두 절벽이고 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듯 장대하였다. 천문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편도만 30분 정도 걸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귀곡 잔도와 천문 산사로 향했다. 이 길은 작년 2008년도에 개방하였으니 이 절경을 지나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 오는 날이 1년에 70% 정도라고 한다. 비가 오면 통행을 금지한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이 길을 갈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날씨가 선선하고 상쾌한 산바람을 즐길 수 있었다.
산 정상 8부 능선을 따라 천 길 절벽에 제비집을 짓듯 버팀목을 연결하여 만들어 놓은 통로가 이어져 있다. 수백 미터 암벽에서 절경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짜릿하다 못해 현기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놀이기구를 즐기는 기분이랄까? 공포증이 점점 쾌감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발만 내밀고 발아래 비경에 초점을 맞추지 못할 때도 있다. 쉬운 방법으로 동영상만 눌러댔다. 등에 땀이 스며들 때 귀곡 잔도에 도착하니 아리랑이 흥겹게 울려 퍼졌다. 귀곡 잔도는 천문산 국가산림공원에 있다. 잔도 전체 길이는 1,600m이다. 벼랑의 중간에 있어 벼랑과 기복을 같이한다.
다음으로 명조 때 건립되었다는 천문 산사로 이동했다. 상서 지구의 불교 중심지이며 전체 사찰에는 관음당이 있다. 리프트에 몸을 매달고 천문산 중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산길만 다니는 전용 버스에 몸을 싣고 통천 대도의 길을 따라 하늘문이라고 하는 동굴을 찾았다. 절벽에 겨우 2대의 버스가 비킬 수 있는 포장된 길은 암벽을 깎기도 하고, 조금만 터널을 만들고, 눈 아래 석축을 쌓기도 하였다. 통천 대도의 길이는 11km 남짓하고 해발 200m에서 1.300m로 상승하는데 마치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형상이다. 발아래로 절경인데 30분 정도의 거리에 도착한 광장은 상천제다. 하늘 높이 1,000m의 절벽에 동굴이 뚫려 있는 곳까지 1.000개의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다가 허리를 펴는 관광객, 즐거운 표정으로 내려오는 관광객으로 혼잡하다.
거울이 높은 곳에 걸려있는 것 같다. 하늘의 문이 열린 것처럼,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인다. 천문은 말 그대로 하늘로 향하는 문이고, 천공은 하늘로 향하는 문을 만든 구멍이다. 이를 전부 아울러 ‘천문산’이라 부른다. 산은 온통 암반이다. 이곳을 언제 다시 오를 기회가 있겠냐며 사력을 다하여 정상을 정복하였다. 뒷발이 떨리고 무릎이 아파도 성취감이 있어서 좋았다. 땀을 닦으면서 오른 천문 동굴은 남북으로 뚫려 있다. 높이 131m 너비 57m 깊이 60m이다. 뚫린 북쪽엔 절벽과 아득한 눈 아래의 아슬아슬한 천지가 있다.
천문산을 누비는 전용 버스 운전기사는 아무나 운전할 수 없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뽑혀 이곳에서 운전한다고 자랑한다. 대단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한 길이다. 내려오는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벼랑길은 한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다.
다음은 무능 원구의 용왕동 동굴 관광을 하였다. 입구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입구부터 조각한 듯 석순이 보인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하나의 특대형 석회암 카르스트 동굴로서 형성된 시점은 3억 8천만 년 이전이다. 용왕 동굴은 현재 3.5km밖에 개발하지 못하였으며, 총길이의 9분의 1에 해당한다. 시원한 동굴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신기한 모습에 취해 시간을 보냈다.
서호루를 찾았다. 장사에 있는 대규모 중식당으로, 장사 공항에서는 20여 분 떨어진 곳에 있다. 규모가 기네스에 등재될 만큼 크다고 자랑하며, 중국 자금성을 연상시킬 만큼 웅장한 규모와 식당 주변을 성벽이 감싸고 있다. 후난 성의 대규모 회의는 이곳에서 열린다. 예약해야 사용할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이다. 장사시는 인구가 57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서호루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식당 건물이 궁전이나 절처럼 꾸며져 있고 공원처럼 휴식 공간도 많다.
장사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작별 인사를 한다. 자기 부모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시고 북경으로 가시는데 우리를 인솔하느라 비행장에도 못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를 전송하려고 이제 비행장에 왔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울먹였다. 우리 일행이 일제히 박수로 격려했다. 그녀와 우리는 하나의 한국인의 정서가 가슴속에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