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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Nov 07. 2021

어둠 속 사람들

감사할 이유가 보인다

나는 가끔 동료들과 어울려 도솔산에 오른다. 시내 가까운 곳에 있어 많은 사람이 오르내린다. 정상에 서면 시내 정경이 시원하게 보이고 땀을 식혀준다. 그곳에 가끔 눈에 띄는 시각 장애우도 있었다. 여자 친구의 지팡이를 뒤에서 붙잡고 안내하는 대로 산에 오른다. 뒤따라오면서 대화하는 모습만 보면 시각 장애우인지 알 수 없다. 오르는 길에는 큰 돌도 있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인데도 정상인과 같이 빠르게 오른다. 앞을 볼 수 없는데도 그렇게 잘 오르는지 놀랍다. 그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시내 정경을 보고 내려간다. 현대인의 삶도 이 시각장애우의 삶을 닮아, 자기만의 정상에 오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려온다.


한 번쯤 눈을 감고 거리를 걸어보면 얼마나 답답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장애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배려는 빛의 세상에 감사하는 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해돋이, 눈 덮인 나뭇가지, 아기들의 해맑은 미소, 파도치는 해변과 갈매기들, 봄에 새싹이 솟아나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     


빛을 잃고 ‘제2의 삶’을 사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다. 


공연이 끝나면 그는 객석을 향해 한쪽 귀를 내민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몇 명이나 왔을까?’ 가늠해보기 위함이다. 그는 관객의 박수 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예전보다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중도 장애인이다. 중도 장애인은 ‘공황, 거부, 분노, 수용’이라는 4단계를 겪는다. 그는 6살짜리 딸의 눈과 아내와 친구들의 얼굴,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시절의 일상생활이 자주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실명 이후 어쩌다 꿈을 꾸면 꿈속에서라도 세상을 볼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고도 한다. 그런데 점점 꿈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단다. 일상생활에 시각적인 자극이 없으니 기억 자체가 옅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시각 장애우가 되고 난 후에 사물을 보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영화 ‘달팽이의 별’의 내용이다. 


‘달팽이의 별’은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사회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제작한 영화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시청각 중복 장애와 저신장 장애라는 특징을 가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우주가 있다.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가졌다. 달팽이처럼 촉각에만 의지해 아주 느린 삶을 산다. 그러나 주인공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낀다. 주인공은 물속에서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현실의 답답함을 수영을 통해 말한다.


그들은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감았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귀를 닫았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기다린다. 비 온 후 아파트 베란다의 물방울에서도 생동감을 느끼는 부부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들의 마음과 행동을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현재 상황이 어렵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은 모든 사물을 마음껏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선물해주셨다. 어둠을 가르는 사람들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을 그들도 똑같이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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