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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Feb 18. 2022

한 번뿐인 인생길

우리가 흐르는 강은 하나밖에 없다

누구나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죽음에 대한 걱정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삶에 근심은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마지막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그 순간이 지나도 별은 여전히 반짝이고 새벽은 어제처럼 밝아 오고 기쁨과 슬픔도 파도처럼 출렁인다. 오늘 이 아침도, 첫눈도,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없다. 모든 사물은 영원한 것이 없고, 낡고 때 묻고, 사위어 간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하고 떠나간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한 길이고, 죽음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조병화의 ‘먼 여행’이란 시가 있다.    


이제부턴 나를 찾거든

없다고만 해라 


‘어딜 갔느냐’고 묻거든

‘그저 멀리 갔다’고만 해라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거든

‘그저 모른다’고만 해라     


‘그저 멀리 갔다’고만 해라.      


이 시를 읽으면 잊었던 일들이 그리움이 된다. 세월에 물들어 가고, 숨겼던 사연이 잔잔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가야 하는 이 여행길에는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그 먼 길을 홀로 나설 것이다. 돌아보지도 않고, 미련도 원망도 하지 않고, 그냥 여행길에 오를 것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아침 해가 뜨고, 밤이 깊어지면 별이 반짝거릴 것이다. 


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 환자들을 보살폈던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의 임종 직전 ‘깨달음’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들이 말하는 다섯 가지 후회가 있었다. ‘평생 내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 ‘직장 생활에만 매진했던 것’,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것’, ‘오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 ‘조금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내용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고대 도가에서는 만물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고 했다. 변증법적으로 생과 사를 연결하면 태어나면 죽고, 세상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끝나면 그것이 죽음이다. 출생하여 죽음에 이르는 길목에 늙음이 있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자신은 늙고, 볼품없는 모습이 되는 것이 늙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날 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수 없는 빈손이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삶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보지 못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하여 의식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인간은 삶의 끝이 와도 지난 삶에 애절하게 매달린다. 그러나 오늘의 삶은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누구나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현재의 삶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삶이 지금보다 순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원죄에 대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의미는 모든 생물이 겪는 생명 과정의 완전 정지 상태다. 


대중적인 내세관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영적인 세상에서 삶을 이어 간다는 내세관이다. 두 번째는 육체가 죽은 후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러한 재탄생이 계속된다는 내세관이다. 세 번째는 죽음과 동시에 개인은 영원히 소멸한다는 내세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은 첫 번째 내세관을, 불교, 힌두교 등은 두 번째 내세관을, 유물론에서는 세 번째 내세관을 말한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이다. 어떤 이는 조금 살다가, 어떤 이는 오래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 인간의 생명은 봄이 있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는가 하면 겨울이 온다. 소중한 시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은 덧없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추억도, 인생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다 지나갈 뿐이다. 천변에 앉아 귀 기울이고 들어 보면, 모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간다. 희로애락도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견디기 어려운 일도 지나고 보면 나름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그 세상은 옛 노래처럼 흘러만 갔다.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댕기 매고 놀던 옛 친구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 갔나, 모두 다 어디 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날을 그리네. 


가사를 뜯어보면, 삶의 종류가 사람의 생김새만큼 다양하다. 삶은 모양과 색깔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저마다 사연을 담고 산다. 삶은 경험과 보람을 찾아 헤매며, 동화 속 이야기처럼 이어진다. 세상의 소리가 소란하고, 지난 삶이 생기고, 멀어져 가는 추억이 가물거린다. 내 삶은 여전히 굴러가고, 아무것도 없던 밤하늘에 외로움이 가득하다. 세월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길 수 없고, 스쳐 지나간다. 나만의 집을 짓고 살며 욕심대로 가득 채웠는데, 어느 날 거실문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세월은 세월대로 나는 나대로 흘러갔다. 삶은 모두 영화를 감상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눈빛 같았다. 어떤 사람은 감동적인 장면에 흐뭇한 미소를 띠고, 어떤 사람은 영화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에 슬픈 표정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라고 했다. 삶은 낯설고, 어설픈 여인숙의 하룻밤을 사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 군중 속에서 함께 흘러간다. 젊은이가 걷는 길은 노인이 걸어온 길이고, 노인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미래 모습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 노인과 청년은 하나의 집단이며, 세상을 구경하는 구경꾼이고, 서로 이어진 존재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행복한 삶이다. 


우리 인생도 산골짜기 시냇물과 같은 운명이다. 시냇물이 골짜기를 지나 많은 역경을 이기며 바다로 흘러간다. 장애물을 만나면 먼 길을 돌아가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지나 절벽에서 비명을 함께 지르며 손잡고 뛰어내린다. 자기만의 사연을 안고 그렇게 강물 되어 바다로 향한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의 강물이 된다. 그 강물은 이웃이 가는 방향으로만 갈 수 있다. 세상에 흐르는 강은 많지만, 우리가 흐르는 강은 하나밖에 없고, 뒤를 따라만 간다. 함께 흐름에 감사하며 다다른 바다에서 맹물이 짠물로 변한다. 


산골짜기 맑은 물 쫄쫄거리다가 

재잘대는 시냇물 되더니 

나룻배 밀어주는 강물이 되었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순간, 

강의 존재가 사라졌네.      


강물은 존재감을 잃고, 

바다 되어 옛날을 잊더니, 

짠맛만 몸에 배었네. 


함께 흐르던 강물은 

다 어디로 가고 

나 홀로 여기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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