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는 기쁨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르다

by 명문식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지 항문이 몹시 아파 치질 전문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치부를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고, 2~3일이 지나면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 들어서니 간호사들이 입구를 향해 앉아 있었다. 환자 대기실에서 벽에 걸린 소개를 보았다. 인상적인 내용은 3대가 50년에 걸쳐 항문치료 하나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후에 원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이 농담부터 하셨다. 내가 수술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온 것이 처음이라서 긴장했던 모양이다. 검사가 시작되고 항문 속에 기구를 넣고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부끄럽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다시 원장님이 사진 내용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요? 다른 환자보다 상태가 심각해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해야겠어요."

나는 말없이 수술실로 끌려 들어갔다. 수술실에서 팔꿈치와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만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항문을 벌리고 수술기구를 넣어 여기저기 마취 주사를 놓았다. 나는 너무 긴장하여 온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으며, 의사 선생님은 힘을 많이 주어 주사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니 마취가 되었는지 감각이 없다. 치질핵이 너무 커서 너무 많이 자르면 큰일이 생긴다며 일부분만 자르고 상처도 여러 군데 작게 봉합한다고 한다. 감각도 없는 수술이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무통주사 덕으로 수술은 아픈지도 모르고 살점을 띠어내고 봉합에 성공했다. 감각도 없는 수술이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수술이 잘 되었다며 좋아하신다.


간호사가 입원실로 안내한다. 생활 수칙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유인물을 준다. 젊은 사람은 3~4일이면 퇴원하기도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1주일 정도 입원해야 하고 등산처럼 과격한 운동을 하려면 보통 1달 정도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1주일 동안 입원실에 갇혔다. 입원실을 살펴보니 옷장, TV. 냉장고, 간이 책상, 의자, 침대, 화장실이 있었다. 처음에는 좁기는 해도 이 정도 시설이면 1주일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하신 식당 아주머니, 방을 따뜻하게 신경 쓰는 당직 간호사, 보호자도 옆에 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갔다. 어제 했던 생각이 그게 아니었다. 자유가 없었다. 간호사들이 가끔 와서 체크하듯 점검하고 있었다. 옆방 환자들도 서로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책과 TV가 위로해 주었다. 매일 걷던 걷기 운동을 못하니 답답했다. 집 근처 공원에 가고 싶었다.


항문 병원 환자들의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환부가 항문 속에 있어 볼 수도 없고, 아픈 상태에서 대변을 보아야 한다. 그런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치료하려니 목욕도 못하며 매일 환자복을 갈아입어야 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바지에 피자국이 생긴다. 아침마다 환자복이 바구니에 가득하다.


입원실 출입문에 환자 성명과 나이가 보인다. 나이는 60대 이상이 많다. 원장 선생님은 퇴근 시간이 되면 출입문에 노크를 한 다음 살며시 문을 열고 말한다.

"잘 부탁합니다. 이 병원의 제일 연장자이시니 이 시간부터 이 병원 주인이십니다."


사방이 깜깜하고 가로등은 더 외롭고 차 소리만 변함이 없는 밤이 찾아온다. 누워서 책을 읽노라면 자식들이 찾아온다. 자식들의 입장은 따로 있지만 나는 부담스러워 매일 같은 말만 한다.

"뭐 하러 매일 오니, 그럴 것 없다."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날, 혼자 입원실을 지키려니 답답하여 병원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길거리는 나뭇잎만 나뒹굴고 기온은 더 내려갔다. 오가는 사람들은 여전하고 지난 시간의 행복도 여전했다. 7일째 되던 날, 내 건강은 아직 충전되지 못했어도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많은 기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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