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 풍경

by 명문식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동네 공원으로 나왔다. 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봤다.

“요즘은 다들 저걸 보고 걷는구나…”


젊은이들이 공원을 거닐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세대마다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 달랐다.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어렸을 때의 세상은 학교가 끝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숨바꼭질하며 놀았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며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눴다. 그때는 필요한 정보를 찾으려면 백과사전을 꺼내거나 도서관을 가야 했다. 어릴 때 세상은 느리고 단순했지만 사람 냄새가 났다.


지금의 아이들은 집에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만지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학원으로 간다. 각자 휴대전화를 보며 밥을 먹거나, 서로 다른 시간에 먹는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지금은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몇 초 안에 수많은 정보가 눈앞에 펼쳐진다. 지금의 세상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조금은 외롭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때로는 마음의 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옛 시절의 따뜻함과 지금의 편리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신문지가 있었다. 신문을 펼치면 나는 스포츠면이나 만화를 찾아 훑었다. 신문은 읽고 나서도 쓸모가 많았다. 미술 시간이면 우리는 책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크레파스를 꺼냈다. 때로는 신문지로 모자나 칼을 접어 놀기도 했고, 화장실 휴지가 다 떨어졌을 때 급히 부드럽게 구겨 쓴 적도 있다. 그렇게 신문지는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도구였다.


하지만 언제부터, 집에 신문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속보를 확인하고, 종이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신문지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신문지 특유의 잉크 냄새, 접는 손끝의 감각도 점점 희미해진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했다. 신문지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고, 누군가에겐 신문이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더 빠르고 편리한 방식이 있지만, 그 느리고 따뜻했던 시간이 그립다. 신문지가 이렇게 많은 기억을 품고 있을 줄도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신문지가 하루를 여는 소리였다. 문 앞에 조용히 놓인 신문지를 펼치면, 세상의 소식과 함께 오늘이 들어왔다. 이제는 문을 열어도 신문지는 없다. 사람들이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켜고, 손가락 몇 번이면 속보가 쏟아진다. 잉크 냄새도, 종이의 바스락 거림도, 슬며시 끼워진 광고지도 더는 없다.


오래된 담장은 아파트 울타리로 바뀌었고, 사람 대신 차량이 골목을 메운다. 현관 앞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인사는 초인종 너머 배달 음식이 대신하고 있다. 예전엔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구름 모양을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오늘 비 오겠다’라는 예감 하나에도 설렜다. 지금은 하늘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날씨도 앱이 알려준다. 구름은 예보일 뿐, 이야깃거리는 되지 않는다.


거리엔 더 많은 간판이 생겼지만,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풍경은 점점 줄어들었다. 창밖을 보며 멍하니 생각하던 시간이 줄어든 대신, 알림과 소음이 늘어났다. 세상은 분명 더 편리해졌고, 더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변화 속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땐 불편했지만, 따뜻했고 지금은 편리하지만, 조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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