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동정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삶

백수로그를 마감하며

by MOON

어떤 말로 백수로그를 끝낼까 고민했다. 이제 내 글감은 떨어져 가고 밑천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재미있는 글을 어떻게 쓰지, 싶었다. 그런데,


‘건강한 백수로 사는 5가지 방법’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

이 댓글을 읽고 나도 모르던 걸 깨달았다. 그동안 백수 생활을 예찬하고 나와 같은 백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백수로그를 썼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동정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라는 당부라는 걸.



백수라는 굴레에 탈출하고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굴레를 뒤집어쓴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한 스타트업에 취업해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다. 아직은 마케터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하기도 하고 또 되고 싶지 않기도 했던 직장인이 되었고, 다행히 새로이 시작하는 직장인 라이프가 힘들거나 어렵거나 싫지는 않다.


나는 백수로그를 읽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지만, 나 또한 백수로그를 쓰면서 많이 변화했다. '백수라서 행복해요'라는 글로 백수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장난스럽게 글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자꾸만 백수에 대한 글을 쓰고 생각하다 보니 내가 '나'를, 내 신분인 '백수'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다.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백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가 볼 생각도 하지 않던 동네와 지역을 방문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흥미로운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다녔다. 글로 풀어놓기 민망할 만큼 사소하고 작은 것이지만, 반대로 내 일상과 기분을 통째로 바꿔놓는 일이기도 하다.


외않헤?

백수로그는 오늘부로 잠시 막을 내린다. 하지만, 내가 백수로그를 쓰면서 가졌던 마인드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일주일 중 5일, 8시간 이상씩 사무실에 갇혀 있다 보면 '긍정적인 태도'는 곧잘 사라질 것이다. 고작 2주 차 직장인인데도 갈수록 내가 무색무취의 심심한 사람이 되어가는 걸 느꼈을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일, 할 엄두를 안 낸 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한 일을 마구마구 시도해보는 외않헤? 프로젝트! 백수를 벗어났으니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사소한 변화를 시도해보면서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백수로그의 마감을 아쉬워하고 있다면, 당신도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 평소에 해보지 않은 짓을 하고 평소에 되어보지 않은 나를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



나의, 여러분의 건강하고 행복한 백수 생활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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