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라이프에서 해방되다
나는 스스로가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격 대비 성능,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돈을 아낀다는 의미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엔 누가 안 그러겠냐마는,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무턱대고 비싸게 맛있는(?) 음식보다는 가격 대비 맛있는 음식을 고르곤 했고, 한 계절에 옷을 두 벌 이상 살까 말까 했다. 나의 행복보다는 내 통장의 행복을 중요시했던 삶이었다.
‘가성비 라이프’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그다지 급하지 않은 것에는 돈을 덜 쓰는 대신 꼭 필요한 것(ex. 음식)에는 돈을 풍족하게 쓸 수 있지만, 돈 드는 취미생활은 거의 못 한다. 그래서 난 항상 엥겔 지수가 굉장히 높았다. 굳이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내 소비의 대부분이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그랬던 내가 조금 변화해보기로 했다. 남들이 즐기는 소확행의 삶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나는 항상 비슷한 취미 생활만 반복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때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홀린 ‘슬라임’을 가지고 놀아보기로!
슬라임을 덕질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기포’, ‘엘머스’ 등 슬라임 용어를 쓰고, 인스타그램이나 사이트로 마켓을 열어 판매하고, 슬라임을 개봉할 때는 정성스럽게 영상을 찍어 리뷰를 올리기도 한다.
도대체 이 끈적끈적한 게 뭐라고
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무튼 인스타그램에서 슬라임 덕후들의 추천과 리뷰를 봤던지라 아무 슬라임이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추천한, 소위 ‘슬켓팅’을 해야만 건질 수 있는 슬라임을 사기로 결심했다(나는 슬켓팅으로 사지는 않고, 유명 제작자가 오프라인에 납품하는 곳에서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서 반은 설레는 마음, 반은 의구심을 가지며 뚜껑을 열어 슬라임을 꺼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행복한 질감이었다! 말랑하고 푹신하고 물컹한 촉감인데, 덕지덕지 묻다가도 손으로 문지르면 금방 떨어져 나갔다. 온도에 따라서 물 흐르듯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기도 했고, 조금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덩어리져서 푹신한 촉감이었다.
향기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입에 넣고 싶을 만큼 달달하고 행복한 향기! 마치 미국 어딘가에 있는 캔디샵에 들어가면 날 것만 같은 향이었다. 계속 주물거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입가에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슬라임이 그렇게 인기 있는 이유를. 이건 바로, 어른들의 촉감 놀이였던 것이다!
이날의 경험은 내가 행복을 대하는 생각의 각도를 조금 비틀어주었다.
행복이란 억만장자가 되거나 매일 짜릿한 경험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을 여행하는 것 정도? 그래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을 느끼기도 했고, 가끔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때엔 ‘실패한 음식, 실패한 만남, 실패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몇천 원짜리 촉감 놀이로도 행복을 느낀 뒤로는 음식, 사람, 여행 이외에도 행복거리는 넘친다는 것을, 그동안 느낀 행복과는 조금 결이 다른 행복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내게 맞는 행복을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하는 것도 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나를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행복하게 할까, 고민하고 찾아나서고 경험하는 것이 행복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날의 경험 이후,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타투 스티커를 몸에 붙이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타투걸(!)로 일컬어지기도 했고, 어릴 땐 아무리 시켜도 싫어하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가성비 라이프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 도구들을 다양하게 사보기도 했다. 행복에 대한 접근이 달라지자 내 소비의 패턴도 변화한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행복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내 행복의 패턴은 이러이러하다’는
자기만의 공식을 고집하고 있지만,
요즘 그 공식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한 번쯤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해보기를 바란다. 그 시도가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행복을 추구하는 또 다른 길을 만들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