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면 힘들고 외로울 것 같지? 아니지롱!
나는 스물다섯 살 백수다. 사실 아직 대학생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 운동 수업을 들으러 가니까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고 불쌍한 눈길을 보낼 필요는 없다. 난 백수여서 행복하거든. 어떻게 백수가 행복할 수 있냐고? 부모님의 눈치가 싫고, 돈이 없어서 절절매지 않냐고? 백수의 삶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백수도 자기만의 룰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우선 나는 8시간 이상 잠을 잔다.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잠이 들고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난다. 잠이 보약이란 말은 들어봤겠지?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면 아침 햇빛에 일찍 눈이 떠질 위험(?)도 없다. 그리고 나만의 배꼽시계에 따라 규칙적으로 밥을 차려 먹는다. 팀장님의 입맛에 맞춰 메뉴를 정할 필요도 없고, 식당에서 먹는다고 과식할 위험도 없다. 아, 물론 집에만 있으면 레토르 식품만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게다가 운동할 시간도 충분하다. 집에서는 예능 영상을 틀어놓고 홈 트레이닝을 하면 되고, 집에만 있기 싫을 땐 나가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된다. 내가 살면서 이토록 건강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몸이 탄탄해졌다.
백수가 되면 인간관계가 좁아진다. 이게 왜 장점이냐고? 친구도 없고 외로워지는데, 힘들지 않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오히려 좋았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안부를 잘 챙길 수 있으니까. 돌이켜보면 대학 생활 5년 동안 나는 가벼운 관계에 얽매여 살았다. 동아리 활동 때문에 부모님의 절박한 카톡을 외면하고 밤늦게 들어가기 일쑤였고, 잠깐의 관계에 마음을 쓰며 스트레스받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을 보내다 보니 좁아진 인간관계는 오히려 내 숨통을 트여주었다. (바라건대) 곧 직장인이 되면 또다시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얽매일 테지. 그전에 내 사회적 자아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싶다.
백수는 아무 때나 온갖 병원에 다닐 수 있다. 회사나 학교에 매여있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병원 다니기는 꿈도 못 꾼다. 나도 그동안 분명 몸 어딘가가 안 좋은 것 같지만 시간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갔는데, 백수가 된 지금은 널린 게 시간이다 보니 매주 한두 번씩은 꼭 병원을 간다. 요새는 안과와 치과를 다니고 있다. 워낙 이가 잘 썩는 탓에 2달 넘게 매주 한 번씩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안과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갑자기 눈에 상처가 생겨 치료하고 있다. 내가 학교에 다녔다면? 그냥 꾹 참고 자연치유 되도록 기다렸겠지. 물론, 병원에 다니면 큰돈 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엄마, 미안해..)
백수는 돈을 아껴 쓴다. (엄마는 내 병원비를 감당해야겠지만,) 내 생활비는 조금 줄어든다. 나는 평소에 스타벅스의 노예, 일명 별노예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시즌 음료를 10만원치 들이키고 다이어리를 얻었을 만큼. 그리고 카페에서 과제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집에선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매번 카페에 가 일을 했다. 그런데 집에 하루종일 있다 보니 집중력이고 나발이고, 귀찮고 돈 아까워서 카페는 잘 안 간다. 카페인과 당 섭취도 줄이고, 돈도 안 쓰고, 나름 일거양득. 게다가 좁아진 인간관계 덕분에 친구들과 약속 잡을 일이 줄어든다. 엥겔 지수가 정말 높은 나였는데, 줄어든 식비가 백수의 통장을 구원했다. 사람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옷이나 신발 살 일도 없다. 생활비가 줄어드니 부모님의 눈치도 안 보이고 마음도 편안하다.
이것 말고도 좋은 점은 더 많다. 밖에 잘 안 나가니 미세먼지 폭격 맞을 일도 없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부모님과의 대화 시간도 늘어나지, 설거지를 해놓아서 칭찬받는 건 덤. 백수라서 힘들다는 건 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백수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