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스무 살 초반의 저는 누구나 알 법한 기성 작가들의 소설을 강박적으로 읽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교과서에 실린 '주요 작가'들의 글만 읽었던 게 버릇이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신진 작가들의 소설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화두를 섬세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소설을 읽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과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작가상'은 매년 문학계의 젊은 작가를 알리는 상입니다. 올해는 총 6명의 수상자 중 5명이 여성 작가였고, 작품 속에는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여성과 소수자의 서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사는 20대, 30대라면 한 번쯤 경험하거나 고민했을 화두가 담겨 있지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이현석 작가의 <다른 세계에서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나'가 우러러보는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젠더 건강 시민단체 활동가 '희진 언니', 그의 제안으로 전문가 칼럼 연재에 참여하는 산부인과 전공의 '나', 그리고 동생 '해수'입니다. '나'는 희진 언니가 낙태와 관련하여 쓰는 글이 너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약물 낙태는 다음 임신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어 안전하다'거나, '모든 여성은 낙태를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뉘앙스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진 언니와 같은 단체의 구성원들은 낙태죄 폐지라는 목표를 위해서 "대중적인 공감대를 조성"해야 하니 조금 참아 달라고 말하고, '나'는 계속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런 와중에 동생 해수가 임신 소식을 전해 옵니다. 해수는 임신과 결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나'는 해수가 갑작스런 임신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해수와 뱃속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미안함을 느낍니다.
마침 이 소설을 읽은 날,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과 관련한 기사를 읽었습니다(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자발적 비혼모' 사유리가 쏘아올린 화두). 사유리 씨는 '낙태를 인정하라'는 말처럼 '아기를 낳는 것도 인정하라'고 말했습니다. 두 선택은 사뭇 달라 보이지만, 모두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지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소설 속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저는 사유리 씨의 선택이 하나의 이슈로 끝나지 않고, 여성들이 '정상 가족'이 아닌 형태를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깊이 바랐습니다. 나아가서 임신은 항상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낙태가 다른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내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선택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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