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시대> <소금차 운전사>
명랑하고 통통 튀는 색감이 가득한 <서부 시대>와 고독한 정서를 그리면서도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아름다운 <소금차 운전사>를 소개해요. 사운드트랙이 있는 멋진 그림책이랍니다!
주제곡 <멋진 사람들>
<서부 시대> 페터 엘리오트 글, 키티 크라우더 그림, 김영미 옮김, 논장 2020
‘사냥 나간 사람은 자리를 뺏긴다’는 격언을 재해석한 그림책 <서부 시대>는 낯선 이에게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고 연대하는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벨기에의 동갑내기 작가 페터 엘리오트Peter Elliott와 키티 크라우더Kitty Crowther가 함께 만들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뮤지션인 페터는 이 책에 글을 쓰고 주제곡 <멋진 사람들>을 만들었어요. 키티는 목탄으로 무게감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색상과 율동감 있는 그림으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야기는 아메리카 원주민 ‘나’가 말을 타고 첫 사냥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멋들어진 사냥은 하지 못해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지요. 문을 연 순간 깜짝 놀라고 마는데… 낯선 친구가 본인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거예요!
“사냥하러 나간 사람은 자기 자리를 뺏기는 거야! 어쩔 수 없어.” 함께 사는 카우보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합니다. 하지만 원한다면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덧붙이지요. 광대 ‘코코’는 나의 자리를 차지할뿐더러 나의 잠옷을 입고, 내 아버지에게 엽서를 쓰고, 내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잡아요. 나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지만 코코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합니다.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고, 그가 재미있는 친구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요. “그 친구가 빼앗은 내 자리가 그리 아쉽진 않았어!”라고 인정하게 될 때쯤, 코코가 사냥 나갈 차례가 됩니다.
누군가 사냥을 나가면 빈자리는 계속 채워져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형형색색 옷을 입고 어울리는 장면이 환하게 펼쳐집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은 ‘마틴 루서 킹’,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처럼 인류와 자유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따왔어요. 카우보이는 총을 갖고 있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졌고요. 다양성과 평화, 환대의 메시지가 가득한 <서부 시대>는 QR코드로 삽입된 주제곡과 함께 감상할 때 더욱 경쾌하게 즐길 수 있답니다. '멋진 사람들은 뭉친다wonderful people join together'는 노랫말로 이 작품을 요약하고 싶어요.
• 피터 엘리오트&키티 크라우더 인터뷰 보러 가기(영문, 작업 이미지 수록)
• 키티 크라우더가 궁금하다면(최혜진 작가 브런치)
<소금차 운전사> 올란도 위크스 지음, 홍한결 옮김, 단추 2019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크리스마스이브,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노인이 ‘귀하의 업무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노인은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팔고 겨울에는 도로에 소금을 뿌리는 ‘소금차 운전사’예요. 마지막 근무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묵묵히 준비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낡은 밴을 몰고 ‘어둡고 푸른 한밤의 세상’(p52)을 오롯이 마주한 노인. 상향등 불빛에 비친 눈발에 감탄하며 ‘수많은 작은 눈송이가 환히 빛나 하늘의 별들 같다’(p56)는 생각에 잠깁니다. 익숙한 동네 풍경도 창문 사이로 흘러가지요. 하지만 오늘 일이 영영 끝나면 내일부터는 어쩌지요? '내 일의 끝은 내가 정한다.'(p66) 노인은 아무런 낙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걸 거부하고 자유롭게 떠납니다. 익숙한 풍경을 뒤로하고 소금을 뿌리며 멀리, 더 멀리요.
<소금차 운전사>를 쓰고 그린 올란도 위크스Orlando Weeks는 영국 인디 록 밴드 매커비스The Maccabees의 리드 보컬로 활동했습니다. 이 책을 작업할 때 작가는 밴드 해체를 앞두고 있었고, 아버지의 은퇴와 기관차 엔진 수리기사로 일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해요. 작품에 도 소중한 일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이 처연하게 전해져요.
특별한 점은 작가가 그림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을 작사, 작곡, 노래했다는 것! 노인의 말을 멋지게 낭독한 배우 폴 화이트하우스Paul Whitehouse의 목소리와 노래가 어우러진 사운드트랙을 틀어놓으면 책에 흠뻑 빠질 수 있습니다. 저는 1시간을 들여 84쪽의 책을 천천히 감상했는데요, 책장을 덮으니 한 편의 독백극을 본 듯한 여운이 남았어요. 매서운 추위와 쓸쓸한 감정이 전해지지만 마냥 슬프지만 않은 이유는 삶을 향한 노인의 자긍심과 노래하는 작가의 따스한 목소리 덕분이겠지요. '따뜻한 슬픔'이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면 저는 <소금차 운전사>를 떠올릴 거예요.
그림책은 만만한 분량 때문에 1분 안에 휙 볼 수도 있지만 마음먹으면 1시간을 훌쩍 넘게 감상할 수도 있다는 것, 감상의 폭은 독서 시간과 관계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림책 읽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이야기의 장이 더 커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며 이번 레터를 마칩니다.
틈틈이 25호는 아름답고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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