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드라마 <라이프>
<부부의 세계>를 보셨나요? 오늘은 그 드라마의 원작 <닥터 포스터>와 같은 세계관을 가진 스핀오프 드라마 <라이프>를 소개합니다. <부부의 세계>가 워낙 강렬하고 자극적이어서 이 드라마도 마라 맛일 줄 알았는데, 사뭇 담백해요. <라이프>는 한 건물에 살고 있는 네 이웃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들여다보면서 시작합니다.
2층에 사는 게일은 남편 헨리와 단둘이 살고 있는 70세 여성입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 남편과 함께 셋이서 차를 마십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꾸 게일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봅니다. 그 눈빛이 찜찜했던 게일은 혼자 그를 찾아가 무슨 뜻인지 캐묻습니다. “네 남편. 오랫동안 그래 와서 넌 모르는 것 같아.” 사실 남편 헨리는 게일을 하인처럼 부리고, 남들 앞에서 그를 비웃는 걸 농담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제야 게일은 5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모른 척했던 헨리의 진짜 모습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헨리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순간, 헨리의 인생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1층에 사는 한나는 우연히 만난 앤디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후 앤디는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떠나는데, 돌아와보니 한나는 리엄이라는 남자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앤디와 한나는 서로에게 계속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죠. 앤디는 앤디 나름대로 한나의 삶에 자신의 자리가 없어 힘들어 하고, 한나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리엄과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앤디 사이에서 계속 갈등합니다. 그 와중에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한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최근에 아내를 잃은 데이빗은 아직 사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왜 리버풀에서 사고를 당한 건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데이빗은 원래 아내와 함께 오려고 했던 휴가지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납니다.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현실로 돌아오지만, 그가 가르치는 대학 수업에 들어가니 그 여자가 수강생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를 받아들여도 괜찮을지 데이빗은 혼란스러운데, 아내의 죽음에 이 여자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의 집 맞은편에 사는 벨은 <닥터 포스터>와 <라이프>를 이어 주는 인물입니다. <닥터 포스터>의 주인공 친구 애나는 자신의 성과 미들네임까지 남편의 것으로 바꿀 만큼 그를 사랑했지만, 남편은 바람을 피웁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애나는 남편을 떠나 이곳 맨체스터로 이사를 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벨로 바꿔 버리죠. 혼자서는 너무 외로워 남자를 만나 보려 하지만, 쉽게 잘 되진 않습니다. 심지어 동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사춘기 조카를 벨이 맡아 키워야 할 판입니다. 정규직 자리를 구하는 것마저도 잘 안 되고요. 벨은 전혀 통제가 안 되는 삶에 지쳤습니다. 이렇게 꼬일 대로 꼬인 삶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있죠, 나도 오늘 깨달았는데 삶의 변화는 느닷없이 닥치기도 해요. 그저 받아들여야 하죠.
게일은 특유의 차분함과 연륜으로 데이빗, 한나, 벨이 힘들어할 때 조금씩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게일에게 벌어진 일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울 텐데도 혼란스러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죠. 그래서인지 네 인물의 복잡한 사연에 비해 드라마는 영국의 습기 차고 시원한 아침 바람처럼 차분합니다. 게일, 벨, 데이빗, 한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선택을 합니다. 모두에게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최선의 선택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눈물 콧물을 쏙 뺄 만큼 눅진하지도 않고, 열린 결말로 여운을 남기지도 않지만 왠지 드라마의 인물들이 모두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마 저와 제 가족, 친구들의 선택과 인생이 겹쳐 보여서 그런가 봅니다. 드라마로 마음을 달랜다는 건 이런 건가 봐요. 담담한 인생 이야기, 드라마 <라이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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