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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Mar 22. 2022

내향 직장인이 회식이 싫은 이유

꼭 술을 마셔야만 친해질 수 있나요?

" 코로나 때문에 회식을 못해서 너무 아쉽네. 술도 같이 마시고 해야 좀 친해지는 건데."


"그러게요, 너무 아쉬워요!"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비록 2년간 답답한 마스크 속에 사람들을 가두고, 맘 편히 여행 한 번 못 가게 만든 '망할' 코로나지만 이럴 때는 너무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다. 2년간 회식 한 번 없는 회사생활을 하다니, 정말 만만세다.




 회식은 내향인들에게는 독 같은 존재다. 일단, 여럿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웃고 소리치고 수다를 떠는 상황 자체가 내향인을 쪼그라들게 한다. 술이 들어가고 다들 어느 정도 취하면 귀가 먹먹-해지고 얼굴이 버얼개지면서, 점점 더 목소리들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한다. 특히,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더욱더 큰 소리에 예민해지게 되는 나에게는 이런 회식자리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또, 오가는 대화는 어떠한가. 단하건대, 내가 2년 전까지 참여한 회식에서 '어머나, 저 직원은 정말 달리 보이는걸?', '사무실에서의 저분의 모습은 내가 착각한 모습이었구나. 실제로는 더 좋은 분이었구나.'라고 생각할 만큼의 영양가 있던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 물론 반대는 있다. 멀쩡했던 사람이 회식 자리에서 '개'의 범주에 슬며시 발을 들이려는 모습은 종종 보곤 했다. 이러니, 내가 회식을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회식의 순기능, 장점을 들라하면 1. 맛있는 음식, 2.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를 통한 친목 도모 정도를 흔히들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극도의 내향인인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과도 그런 자리를 쉽게 가지지 않는다. 불편하다기보단, 단순히 그 시간에 혼자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정작 퇴근 후 짧은 휴식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 vs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고르라 하면, 압도적으로 전자를 고르는 때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퇴근 후 시간을 사무실에 평일 8시간 주야장천 얼굴을 맞대고 있는 회사 직원들과 보내는 데에 쓰라고? 사실상 1년 내내 한 사무실에서 같이 회의하고, 업무 처리하다 보면 친해질 사람들은 어떻게든 친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렇게 부모님보다도 더 자주 보는 직원이어도 끝까지 못 친해지는 직원은 딱히 술자리에 함께 한다고 해서 친해지지도 못한다. 결국, 현재의 내가 주변 사람들과 느끼는 친밀도에는 플러스의 영향을 하나도 미치지 못하면서, 괜히 알코올만 입에 들이붓느라 간만 상하고 2차, 3차까지 안주나 주먹는다고 위만 부대끼게 되는 회식이 난 영 달갑지가 않다.



맞부딪히는 술잔에도 위아래가 있다는 것이 늘 불편하다.


 술을 좋아하는 상사를 많이 만났다. 주종도 다양했다. 와인에 대해 일가견이 높은 사람, 막걸리와 전만 취급하는 사람. 정말이지 술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주는 분도 계셨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그런 분들과 함께 지겹게도 많은 회식 자리에 따라다녔다. 그때 당시의 나는 '모든 잘 해내는 만능 신입'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내 본능인 내향성을 억누르고 소화장애와 지방간을 얻어가며 꾸역꾸역 회식 자리에 나갔더랬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회식 자리에서 보이는 상사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사람마다 '회식'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랐었던 것이다.



1. 친해지고 싶어 형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그냥 자기 부하직원들에게 맛있는 음식 먹이고, 딱딱한 사무실보다는 조금 더 편한 분위기로 상사와 부하직원이 허심탄회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시는 유형이 있다. 자기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급 식당을 데려가 주고, 나이가 어린 직원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멋들어진 식당도 예약하곤 한다. 술을 못하는 직원에게 애써 강권하지 않으며, 최대한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막차가 끊기지 않는 선에서 모두를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간에 회식 자리를 종료시킨다. 


2. 나도 불편해 형

그래도 같은 팀이면 회식 한 번은 해야 팀장의 면이 선다고 생각하고 본인도 불편하신데도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팀장과 팀원들이 전혀 친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사무실에서나 할 법한 업무 얘기의 연장선이 이어지고, 그 선마저 가늘게 이어지다가 종종 뚝-하고 끊어지기 일쑤이다. 다들 괜히 잔만 만지작거리다가, 짠-하고 술잔을 부딪히는 횟수만 많아진다. 적당히 어설프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려고 노력해보다가, 굉장히 빠르게 자리가 파하곤 한다.



3. 이 회식은 내 것이다 형

 본인이 술 먹고 싶어서 만든 자리일 경우가 많다. 본인이 원하는 술자리 분위기가 있으며, 그 분위기에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맞춰줘야 한다. 식당이나 메뉴도 부하직원들의 니즈는 상관없이, 본인이 먹고 싶은 게 최고다. 자기가 가는 단골 술집이 모두가 좋아할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유형. 가서 또 단골 술집 사장님 팁 챙겨주고 안부 물으시느라 부하직원은 안중에도 없는 유형이다. 직원 개개인의 가정사, 애인 여부, 결혼 여부 등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만 쏙쏙 골라 질문하고, 술을 안 먹는 직원이 있는 경우 눈앞에서 소주잔을 흔들어대며 왜 안 먹냐고 비꼬는 건 일상이다. 1차, 2차, 3차, 새벽까지 이어지는 건 당연하고, 마지막 술자리는 내 집 내 동네 앞에서 해야 속이 시원하다. 귀가는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나는 모른다.







위의 유형을 읽으며, 1,2번이 좋고, 3번은 최악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세 가지 유형을 다 겪어본 바에 의하면, 사실 나는 셋 다 싫다. 코로나 시대를 겪어오면서, '회식' 안 해도 인간관계 잘 굴러간다는 것을 체험해보아서 어쩐지 회식이 더 싫어졌다. 나는 회식을 안 했어도 작년 같은 팀이었던 또래 직원과 더없이 친해졌고, 재작년에 옆자리였던 선임님과는 사무실에서 매일매일을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깃거리를 조잘거렸었다. 내향인들이 선호하는 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내 본연의 업무를 하다가 서서히 스며드는 관계이다. 꾹 닫힌 마음의 문에 그냥 알코올을 궤짝으로 들이부어 강제로 열어서 '내일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술을 안 먹어~?' 하고 비꼬는 멘트를 꽂아 넣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꼭 메타버스에서 회식하는 세상이 도래하길. 회식 없는 세상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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