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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n 25. 2017

권위와 복종

상대의 권위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우리

나는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다른 강사들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강의를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TV 홈쇼핑을 즐겨보지

않더라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최소한 몇 번은 본 얼굴이어서 그런지 쇼호스트라고 소개를

하면 그제야 ‘아하’ 하면서 대부분 편안한 시선으로 바뀌고 강의를 듣는다. 

문제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특히 TV홈쇼핑에 관심이 아예 없어서한 번도 TV 홈쇼핑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예 케이블 채널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일단 나를 보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친근한 것과는 정 반대쪽에 있을 법한 어딘가 경계하는 눈빛. 이런 눈빛과 강의 처음부터 마주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상당히 부담스럽고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어딘가 말투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이럴 때 긴장한 것이 티가 나면 강의를 듣는 상대는 경계를 넘어서 아예 무시를 해버리고 내 이야기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튼 이때부터 나와 다수의 사람들과 팽팽한기 싸움이 시작되는데 결과는 5분도 되지 않아 싱겁게 끝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내가 ‘쇼호스트 누구입니다.’라고 밝히는 순간 나를 경계의 눈빛과 무관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검색 창에 ‘문석현’이나‘쇼호스트 문석현’을 입력하고 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다행히도 경계와 무관심은 사라지고 다소 따뜻한 눈빛의 시선들이 나를 반겨준다. 그러면 기싸움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나에 대한 부연 설명 없이 그냥 준비한 것들을 풀어놓으면 된다. 다행히 도포 털 사이트에 있는 나에 대한 내용과 기사들 덕분이다. 그런 글들의 제목만을 대충 훑어보고도 사람들은 나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뀐다. 가끔 쉬는 시간이 되면 굳이 나에게 다가와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아 저는 처음 보는 분이라 누군가 하고 검색해 봤더니 대단한 분이더군요. 역시 강의도 정말 좋으시네요. 오늘 꽤 피곤한데 정말 잠을 못 잘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단순하게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나는 궁금해진다. 나에 대한 검색 결과를 보고 나서 강의가 흥미로워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강의 자체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운전을 하다가 수억 원을 호가하는 외국 차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 차보다 작은 배기량의 차나, 버스, 트럭 등이 깜빡이를 켜면 인정사정없다. 절대로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라. 다른 친구들 말은 절대 듣지 않아도 반장이 하는 말은 일단 수긍을 한다. 선생님들 도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는 관대하다. 이런 권위에 대한 사회적 복종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는 강사들의 강의 주제를 보면 대부분이 ‘나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방법’, ‘끌리는 사람이 되는 스킬’, ‘카리스마 넘치는 스피치’ 등 말하는 사람의 에토스를 강하게 부각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 실제로 나의 전문성이나 권위 등을 먼저 상대에게 어필한 후 대화를 시작하면 상당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주위에는 전문가가 너무 많다는 점과, 실제로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 인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급한 성격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어떤 사람의 타이틀 몇 개만 대충 듣고서는 서둘러서 그 사람의 전문성이나 권위를 인정해버리는 태도이다. 본인이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보고서는 성급하게 결론짓고, 자신의 판단에 대해 맹신하는 성향이 우리는 강해도 너무 강하다. 그래서 결국 실체를 보지 못한다.

박주영의 소설 ‘백수생활 백서’에는 매사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희’라는 학생이 있다. 

‘유희는 수업을 자주 빠지고 툭하면 조퇴를 하고 결석도 자주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희는 요주의 인물이 아니었다. 선생들은 유희의 성적이든 배경이든 외모 든 그런 것들에 속아서 유희의 말이라면 대부분 신뢰했고 의심을 하는 경우 유희는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생각해 냈을까 싶을 정도의 고도의 거짓말로 무마시키곤 했다.’

툭하면 수업을 빠지고 조퇴를 하는 학생, 수업시간에는 과목 불문하고 내내 잠만 자는 학생. 누가 봐도 문제아인 학생. 더구나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선생님을 속이는 학생이라면 누군가가 똑 부러지게 버릇을 고치거나 최소한 상담이라도 했을 텐데 그 어떤 선생님도 유희의 못된 버릇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책에 나온다. 

‘학교 다닐 때 그녀가 그렇게 사고를 치고도 무사했던 이유는 유희가 전교 1,2 등을 다투는 수재, 아니 천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희는 성적 이외에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무기가 또 있다. 

‘유희는 어디 가서도 미움받을 타입은 아니다. 유희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유희는 일단 생긴 것 덕을 본다. 얼핏 보면 착하고 순하게 생겼다. 그 외모 덕이 3개월은 간다. 유희가 이상한 짓을 해도 사람들은 실수를 하는 거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고의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인 로버트 차일 디니 (Robert B.Cialdini)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권위에 대한 복종’에 대해서 “사실상 우리의 행동은 권위자의 명령에 대해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메시지 발신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판단이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아주 위험한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에 아무런 스스로의 보호장치 없이 메시지 발신자의 권위, 전문성, 매력도에 크게 휘둘리고 있다. 그리고 휘둘리고 있는 사실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후회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너희 서장 남천동 실제? 내 가임 마 어! 너희 서장이랑 인마 어! 같이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인마 다 했어!!”

“아…… 그래요? 그럼 일단… 사과를 드려라.”

“죄송합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에나 오는 대사인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하는 대사 중 하나다. 왜 이 대사가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까? 

 남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적당하게 전문 용어도 사용하고 남들의 감히 범접 못할 나만의 전문 영역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남들보다 수려하진 않아도 매력적으로 연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의 권위가 돋보일수록 상대는 더 쉬워지니까.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형사의 어수룩한 모습을 그냥 웃어 넘기기엔 뭔가 개운하지가 않다. 누구에게나 저 형사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던 경험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크게 손해 봤던 쓰라린 경험이 있을 테니까. 

정보가 과하게 쏟아지는 사회에 살다 보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권위에 아무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다음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지만 안타깝게도 또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문제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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