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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02. 2017

그저 남들만큼만

언제나 주위를 의식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

초등학교 4학년인 소영이는 어릴 때부터 어학에 관심과 재능이 많아 서학원이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는다. 당연히 소영이의 어머니는 학원이든 학교든 어디를 가 도살 맛이 난다. 우리 소영이가, 세상에 우리 소영이 어학영재라니. 다른 집 아이들은 머뭇머뭇 영어로 말하는데 별로 공부한 것 같지도 않은 소영이는 그 긴 문장의 영어를 거침없이 한다. 그럴 때마다 주위 엄마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소영의 엄마는 뿌듯함을 만끽한다. 그럼 소영이의 어머니는 소영이를 위해서 지금 당장 어떤 투자와 배려를 해 줄 것인가?  보다 수준 높은 어학 전문 학원을 알아볼까? 그래서 외국어 고등학교를 목표로 올 인을 해? 아니 면조 금 무리를 해서라도 아예 조기 유학을 보낼까? 어학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소영이 덕분에 소영의 어머니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모두들 생각하겠지만, 소영이의 미래를 위한 어머니의 결정은? 

영어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수학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실력 있는 수학 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등록한다. 그리곤 소영이에게 말씀하시기를 “영어 성적은 이런데 수학은 이게 뭐니? 영어성적 반이라도 쫓아가야 하잖아. 이 학원 엄청 비싼 데어. 수학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어학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소영이는 그렇게 평범한 아이의 길로 접어든다.   

 내가 지금 과장을 하고 있다고? 과연 그럴까? 보는 사람에 따라서 판단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흐르는 공통의 정서를 부인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내가 나를 보든 내가 타인을 보든, 잘하는 것보다는 그 반대의 것에 집중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더 부각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남들보다 떨어지거나 부족한 것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남들보다 잘하지도 말고 뒤쳐지지도 말고 그저 중간에만 있어라.” 또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다. 

 정아은 의장 편 소설 잠실동 사람들은 사교육 경쟁으로 시작해서 사교육 경쟁으로 끝나는 모래성 같은 소설이다. 이소설 전체를 이끄는 힘은 물론 ‘경쟁’이라는 테마지만 경쟁 중에서도 최소한 뒤쳐져서 살지만은 않겠다는 굳은 경쟁 의지의 연속이다.

“저희가 너무 오래 있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당신 일찍 왔네? 전화가 없어서 늦는 줄 알았어.”    

안방에서 지나 손을 잡고 나오던 아내가 놀란 눈을 했다. 긴 머리끝에 부드럽게 웨이브를 넣은 아내의 얼굴에도 검붉은 딱지가 흩어져 있었다. 한 달 전, 태민 엄마가 유명 피부과에서 잡티제거 시술을 받고 온 뒤 지환의 축구부 엄마들 두 명이 같은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150만 원이라는 금액에 망설이던 아내도 결국 2주 전에 시술을 받았다. 다들 받는데 어떻게 나만 안 해. 같이 있으면 나만 자기관리 안 하는 게으른 여자처럼 보인단 말이야. 선언하듯 말한 아내는 다음 날 재 시술 기간이 도래한 해성 엄마와 함께 피부과에 갔다.

소설이기 때문에 낄낄거리면서 아내를 흉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영 묵직하다. 특히 ‘다들 받는데 어떻게 나만 안 해!’ 이 부분. 이 부분보다 더 묵직하게 머리를 강타하는 문장은 이 소설에서 수두룩하다. 

책상엔 어느새 강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수정은 화를 참기 위 해크 게 심호흡을 했다. 얘는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럴까? 길가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넋을 놓고 쫓아가고, 주머니엔 달팽이나 귀뚜라미, 심지어 개미들까지 넣고 다닌다. 빠른 애들은 벌써 해리포터를 원서로 줄줄 읽는다던데, 얜 왜 이리 철딱서니가 없을까.

“너 오늘 로피아 갔었잖아! 레벨이 낮아서 못 다닌단 얘기 들었잖아!”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로피아란 말이 나오자 지환은 얼른 눈을 내리 깔았다. “혹시 기죽을까 봐 별말 안 했더니 이게 진짜 괜찮은 줄 알고 있어. 야 허지환! 너 지금 큰일이야! 네 친구들은 다 미국 초등학교 3, 4학년 애들 보는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는데, 넌 그 학원에 들어가지도 못한대. 엄마 말 듣고 있어, 지금?” 

지환이 엄마의 얘기는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제발 지환아, 다른 아이들 하는 만큼만 해 줘! 이걸 못하면 너나 나나 여기서 끝이야.’

TV 홈쇼핑에서도 아이템을 막론하고 가장 쉽게 쇼호스트가 응용하는 코멘트도 이런 것들이다. ‘이 정도도 안 하면…… 곤란한데……’ 

<홍삼 방송 때> “이것 먹고 식스팩 만들어지는 것 아니에요. 또 이거 먹는다고 몸짱 되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아이가 지금 앉은자리에서 5분만 더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 내 남편이 출근할 때 환승역에서 떠밀려 가지 않고 힘차게 뛰어서 환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건강할 필요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보시는 이 홍삼이 딱입니다. 이 정도도 안 하고 어떻게 그런 힘을 바랄 수 있겠어요?”

<관절 건강 기능식품>

“친구들은 여행이다 뭐다 재미있게 사는데 나는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이건 아니죠. 그래서 OOOOO가 필요합니다. 또래보다 앞서 가진 못할 망정 뒤쳐지진 말아야죠.”

“관절만큼은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십니다. 전보다 나빠지지 않으면 성공이라고요. 전보다 나빠지지 않은 게 성공이면 00000은 서프라이즈예요.”

우리는 확실히 성공을 위해서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 몸을 사리는 데에 익숙하다. 그래 서남들이 실패하는 것에 안도하고 내가 그보다 못하지만 않으면 성공이다라고 판단한다. 남들보다 더 받는 것도 원치는 않지만 남들보다 덜 받는 건 죽도록 싫어한다. 그래서 늘 하는 말이 ‘남들 하는 만큼’이다.   ‘항상 남들 하는 만큼’을 신경 써야 하니까 ‘남들 하는 만큼’을 못했을 때에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들 다 가는 학원을 못 가면 괜히 불안하고,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불안하고, 남들 다 하는 피부관리를 안 하면 뒤떨어진 엄마 취급을 받을까 봐 불안하다. 무엇이 됐든 ‘남들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것은 죽었다 깨도 따라잡아야 할 MUST LIST가 된다. 무조건 달성해야 하고, 일단 달성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여기에다 치열한 경쟁상황까지 덧붙이게 되면 스스로를, 스스로의 판단이나 주위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안하니까. 그래서 이 한마디는 전국 어디를 가도 위력을 발휘한다. “그저 남들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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