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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08. 2017

생각의 속도를 앞지르는 워딩(Wording).

워딩, 낱말의 영향력 

언젠가 회사에서 ‘글쓰기 마케팅’이란 주제로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강사는 현직 카피라이터 로맹 활약을 하고 있었던 분이었는데 본인 소개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광고는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대해 아주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저는 제일 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면서 여러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조직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갑자기 사표를 내고 SBS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방송사에서도 카피라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일을 하다가 다시 그만두고 지금은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같이 일하고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니까 내 자유시간은 많아지고 수입도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광고 카피 관련 강의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제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나중에 무엇을 기억할까요? 당연히 제 말 그대로를 기억하지 못하지요. 심지어 제 이름도 기억을 못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대신 사람들은 본인이 들은 인상 깊었던 말 중에서 문장이 아닌 ‘워딩’으로 기억을 합니다. ‘제일기획’, ‘SBS’, ‘고 수입’ 이런 식이지요. 그래서 광고나 마케팅은 내 말을 듣거나 보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듣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는 이렇게 어떤 것을 기억할 때 전체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워딩(혹은 낱말)으로 파악합니다.” 

 TV 홈쇼핑에서 매출을 올리는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청자가 TV를 통해서 상품을 봤을 때, 그 상품이 주는 이미지나 느낌은 쇼호스트가 하는 수많은 말 중에서 귀에 먼저 꽂히는 몇 가지의 낱말을 취사선택해서 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낱말이나 워딩이 뇌리에 꽂히는 순간, 마음에 드는 순간부터 주목을 할 것이고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는 주문을 할 것이다. 만약 주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워딩이 계속 머리에 남아 주문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워딩 자체에 별 감흥이 없었거나.

 대부분의 TV 홈쇼핑 방송이 정해진 원고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방송언어 훈련이 어느 정도 돼 있는 진행자라 할 지라도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잦다. 만약 시청자가 쇼호스트의 미숙한 방송 언어 사용 능력을 알아차렸다면 시청자는 바로 채널을 돌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완전치 못한 방송 언어 사용은 바로 상품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쇼호스트의 방송언어 사용 능력과 매출과의 상관관계는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해서 항상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그 강사의 강의를 듣고 나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문장이 아닌 낱말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에 주목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문장 전체를 다 파악하고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인상 깊었던 낱말을 토대로 전체를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그 파악을 토대로 성급하게 평가를 내린다. 

 옥성호의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는 대형 교회에 대한 풍자소설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초교회에 야심만만한 김건축 목사가 담임 목사로 부임하고 그가 교회의 규모와 돈벌이에만 집착하면서 각종 비리 사건이 터진다. 급기야는 청년부 목사 부임을 약속받고 각종 비리에 협조했던 제임스 송 목사가 김건축 목사의 비리를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면서 교회는 발칵 뒤집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건축 목사는 제임스 송 목사를 돈으로 포섭해서 본인이 했던 고발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회개 해명서’를 언론에 공개한다. 그런데 그 해명서에는 구체적으로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지적은 없고 두리뭉실하게 무조건 ‘사죄’, ‘회개’, ‘사탄’, ‘용서’ 등의 말만 난무하다. 이 해명서를 읽고 수많은 교인들은 모든 사태 가마 무리된 것이라고 생각할까?

 순 박하지만 꼼꼼한 청년부 장세기 목사가 서초교회의 비서실장 격인 주충성 목사에게 어렵게 말을 한다. 

“그런데 주 목사님, 교인들이 그 해명서를 보고 수긍을 할까요?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좀 걱정이 되는데.”

 주목 사는 내 질문에 내가 청년부 간사들을 향해 말하는 투로 대답했다. 

“장 목사님, 우리 교인들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요. 나는 교인들이 그 해명서도 제대로 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냥 제목만으로도 충분해요. 제임스 송 목사가 회개했다는 제목, 그거로 충분해요. 내가 제목에 ‘회개’라는 단어를 절대 빠트리면 안 된다고 <네버 컷 뉴스>에 강력하게 얘기했지요. 그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거래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제임스에게도 확실히 말했고요……. 우리 교인들은 내용이 어떻든 그런 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임스가 사탄에 의해 잘못했고 회개하고 돌아와 김 목사님께 사죄했다는 것으로 충분해요. 장 목사님이 우리 교인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는 것 같아. 눈높이를 좀 조정하셔야겠어요.” 

 때로는 소설이 그 신문이나 방송 등 그 어떤 매체보다 현실을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관심이 많은 분야나 사건이라 할 지라도 좀처럼 전체를 면밀하고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탐구하지 않는다. 대신 긋겠을 표현하는 몇 가지의 워딩, 낱말로 전체를 규정하는 편향성을 갖고 있다.  인터넷 뉴스의 제목이 왜 점점 격해질 수밖에 없는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일단 격해야 관심을 끌 것이고, 더 무서운 건 제목에서 나열한 낱말만 보고 그 사건을 이해하고 규정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매일매일 쏟아지는 정보량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모든 걸 하나하나 천천히 검토할만한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 

 아무튼 사람들은 문장이 아닌 낱말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나도 방송에서 표어나 선언문 같은 짧은 글로 상품의 특징을 최대한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내 몸의 그린라이트!”

“사막 같은 내 몸에 단비를 뿌려주세요.”(생식)

“수준 높은 건강 관리는 상위 5% 지삼으로.”(홍삼)

“남들은 덥다고 땀나는데 나는 관절 때문에 식은땀 납니다.”

“이제 슬픈 관절이 아니라 기쁜 관절이 됩니다.”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은 건강하게 웃고 있는 관절을 만날 때입니다. 선물 받아 가세요.” 

“아픈 관절이냐 웃고 있는 관절이냐. 고객님이 선택하세요.”(관절 건강 기능식품)

90% 무지방 우유와 10%의 지방 우유가 있다. 어느 쪽에 더 손이 갈까? 

또, 이제 막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지금 못 타면 100% 지각이다. 억지로 몸을 구겨서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는 데 옆의 경고문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라면 어떤 글을 읽었을 때 움찔할 것 같은가?

1.     이엘리 베이터의 사고율은 0.01%입니다. 

2.     이엘리 베이터는 만 번마다 반드시 한 번은 사고가 납니다. 

행동 경제학자 데니얼 커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오는 실험이다.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의 결정이라면 90% 무지방 우유와 10% 지방 우유를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똑 같아야정상이다.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성분의 유유니까.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다. 사고율 0.01%와 ‘만 번마다 반드시 한 번의 사고’는 똑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90% 무지방 우유를 더 선호하고, 만 번마다 반드시 한 번은 사고가 나는 엘리베이터는 지각을 한다 해도 피하게 된다. ‘무지방’이라는 낱말과 ‘반드시 한 번’이라는 워딩이 우리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이거나 냉철한 분석, 합리적인 결정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표현하든 적절한 워딩을 개발하고 찾는 게 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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