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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Gibran Aug 07. 2020

갈대의 슬픈 기억

몇 년 전 여름, 이때쯤인 듯하다. 

70대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시비가 되어 내가 근무하고 있던 작은 파출소에 들어오셨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고, 덩치는 왜소하셨다. 무슨 영문인지 그 할머니와 은행에서 소란을 일으켰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신고를 하였다. 출동한 동료 직원들이 현장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 파출소까지 모시고 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수백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셨다. 옆에 계시는 할머니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시고 난처한 표정만 지으셨다. 정말인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돈을 가져가서 그러는 것일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줄 돈이 있으니 나중에 드리겠다고 할아버지의 소란에 맞추어 드렸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 기분은 조금 풀리는 듯 했다. 


할아버지에게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를 물었다. 

갑자기 할아버지는 "내가 다산 정약용의 후손이다. 감히 머슴들이 내한테 이런 취급을 하면 되느냐"고 우리에게 호통을 치셨다. 마치 그 모습은 사또가 포졸을 혼내는 사극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시더니 어깨를 크게 벌리면서 정말 양반처럼 앉아 있던 의자에 일어나셔서 품에서 아주 커다란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이게 우리 집안의 족보다."라고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시면서 이 분이 정 이품을 지내신 어르신이고, 이 분은 정 삼품을 지내신 분이다. 

모두 정승을 하셨다고 우리 머슴들에게 교육을 하셨다.  


감히 머슴들이 양반의 이름을 물었으니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우리는 한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우리는 머슴이었다. 할아버지는 화가 단단히 나셨다.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해도 막무가내이셨다.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아들 연락처를 몰래 알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셨다.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살펴주는 분이셨고, 할아버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야 한다며 떼를 쓰서 같이 나왔는데 난데없이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셨던 것이다. 아들은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워낙 고집이 세셔서 못하고 있다며 바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파출소에 도착했다. 아들의 말은 잘 들으셨다. 아마도 양반의 아들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 아들에게 물었다. "정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후손이 맞습니까?"라고. 

아들은 맞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훌륭한 분의 자손이셨다. 그 할아버지는. 


우연히 기독교적 세계사가 아닌 그 반대의 시각으로 기술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이슬람 세계에서 유명한 시인 '루미'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있다. 


여러 해 뒤에 샴스는 불가사의하게 사라졌고 루미는 1,000쪽 짜리 시 '마트나비 마나비(영적인 글)'를 써내려갔다. 첫머리의 유명한 구절에서는 루미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피리의 선율은 그토록 가슴이 에일 듯 아픈가? 그리고 그는 스스로 답했다. 왜냐하면 피리는 원래 강둑에서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갈대였기 때문이다. 피리로 만들어질 때 갈대는 뿌리가 잘렸다. 노래 속에서 통곡하는 슬픔은 근원과 연결이 끊어진 갈대의 슬픈 기억이다. 그 다름에 이어지는 3만 쌍의 대구에서 루미는 성적으로 표현된 광적인 신앙의 언어로 수백 편의 이야기를 전했는데, 어떻게 우리 인간 피리들이 근원과의 연결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그려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뿌리가 잘려진 갈대였다. 잘라진 후 피리가 되어 슬픔을 노래하다 그 기억을 서서히 잊어버리고 계셨다. 그 슬픈 기억을 하루 하루 찾으려고 품 속의 족보를 노래하셨다.

아들과 함께 걸어가시는 뒷모습에 끊어진 뿌리가 길게 드리워졌다.   

 

우리 또한 뿌리가 잘린 갈대로 만들어진 피리다. 근원과 연결이 끊겨진. 

저마다 슬픔을 가득 안고 있다. 근원을 찾느라 이곳 저곳을 방황한다. 찾을 때쯤이면 할아버지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난다. 

차라리, 

나는 그 근원을 찾기보다 슬픈 소리를 모아 슬픈 기억을 딛고 일어서고 싶다. 

더해진 슬픔의 그 끝에는 어쩌면 슬픔의 다른 얼굴이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더 이상 슬픔이 아니기를. 

이런 희망을 품어본다.  

오늘도 나는 피리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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