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의 시대
취준생이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변하고 있다. 물론 요즘 같은 취업난에 회사를 고를 처지겠냐만은 그래도 선호하는 회사의 기준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대기업, 연봉을 많이 주는 곳이 이전의 선호 직장이었다면 지금은 덜 유명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이라도 워라밸을 보장하는 회사를 선택한다. 워라밸이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약자로 일찍 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신조어다.
신조어라기엔 사용한 지 몇 년은 된 듯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다. 반면 사축이란 단어는 더 이전부터 쓰였다. 가축에서 따온 말로 회사에서 가축처럼 일한다고 해서 사축이다.
젊은 직장인은 칼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왕왕한다. 비정상회담으로 유명세를 탄 미국인 타일러는 칼퇴라는 단어에 대해 '정시 퇴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준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에 퇴근을 하면 일을 안 한다고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괘씸하다고 그다음 날 업무 폭탄을 맞은 적이 있다는 푸념도 들어본 적 있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먼저 집단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회사와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기보다는 쌍무적 계약관계로 인식한다. 회사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원을 고용하며, 직원은 생계와 커리어 등을 위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한 활동을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제 직장인들은 회사가 평생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에 충성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왔던 시절은 지났다.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은퇴 준비를 하고 자식들을 잘 길러 손주의 재롱을 보겠다는 전형적인 인생계획도 과거의 생각이다.
또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YOLO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한 번 사는 인생 현재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인생을 올인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형태이다.
운 좋게 입사한 회사에서 밤낮으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좀 심하게 말하면 사축처럼 일하다 회사를 나왔다. 은퇴자금은 있지만 충분하지 않고 남은 인생을 즐기기엔 너무 나이 들어 버렸다. 100세까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마냥 놀고먹을 수도 없다. 55세에 정년퇴직을 했다고 가정하면 아직 45년이 남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아직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에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이다.
연봉 3,000만 원, 정시퇴근 요정 VS 연봉 4,000만 원 프로 야근러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엇갈렸지만 의외로 프로야근러를 선택한 친구들이 많았다. 젊을 때 조금 고생하더라도 빨리 전문성을 쌓고 일찍 자리를 잡겠다는 주장이었다.
2017년 현재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절대적으로 퇴근 요정이 많은 표를 받았다. 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회 현상과 연관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부동산이다. 평생 돈을 벌어도 서울에 집한 채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부동산 격차가 커졌다.
꼭 서울에 살아야 해? 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거지
위의 말에 반박을 해보자면 경기도는 집 값이 저렴한가? 경기도 집 값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직장이 서울인 경우 하루 3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가뜩이나 짧은 청춘을 길에서 보내면 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집을 사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백날 월급 모아봐야 집 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그 돈을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 그 방법은 취미활동 일수도 혹은 해외여행일 수도 있다.
일에 대한 가치관 차이에서 생긴 워라밸과 사축이란 단어는 회사의 성장에도 큰 영향이 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사축처럼 일하기를 강요하는 문화라면 그 조직의 형태는 피라미드가 아닌 다이아의 모습을 하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 보이지만 실상은 썩은 물이다. 회사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다 줄 뉴페이스 들은 버티지 못해 나가고 기존 인력들만 계속 남아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도 변화 없이 오랜 기간을 보내면 그들 만의 세상에 갇히게 된다.
워라밸을 어떻게 회사 문화에 녹여내는지 여부가 기업 성장의 열쇠가 되는 시대가 왔다.
정시에 퇴근을 해도 똑같은 퍼포먼스가 나온다면 그걸 인정하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을 아니꼽게 보고 회사에 애정이 없다고 판단하는 세태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