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개발자 생존기
이직 후 초기 적응에 너무 힘을 쏟았는지 주말이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시달렸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번아웃이라는 단어처럼 하얗게 불태운 지난 나날이었다.
회사를 옮긴 게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이직은 현재의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경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다른 업무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일 아침 안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익숙한 일상이 주는 편안함은 무시할 수 없었나 보다.
문돌이의 이직이야기 : https://brunch.co.kr/@moondol/169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단 며칠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직 직후라 남들 가는 여름휴가에는 사무실을 지켰고 9월을 넘겨서야 조심스럽게 이틀 휴가를 올렸다.
휴가의 목적은 힐링 또 힐링이다.
휴가가 길지 않기에 국내여행으로 만족하기로 했고 서울에서 최대한 먼 곳을 고민하다 부산행 KTX 기차표를 예매했다. KTX 표가 원래 이렇게 비쌌나? 고민하다 25% 할인이 되는 새벽 5시 30분 기차를 결제했다. 휴가 당일 눈을 떠서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뛰쳐나가서 출발 2~3분 전에 탑승 완료.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그냥 정상 가격이라도 마음 편하게 가야겠다.
부산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바로 해운대로 향했다.
잠은 기차에서 보충을 했으니 바다를 보며 힐링하기 위해 달려갔다.
출근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같은 지하철을 탔지만 나는 바다를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흐린 날씨였지만 가까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파도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날이 조금씩 개는 모습이다.
머릿속에 차있는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멍함과 내가 하나가 되는 멍아일체가 되는 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겉으로 보면 긍정적인 의미로 보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으로도 소개가 된다. 특히 최근에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당장 좋은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운 데다 겨우 직장인이 되어도 저축하는 돈을 비웃듯이 올라가는 집 값을 보면 미래에 대한 가능성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크지는 않지만 내 집도 마련하고 가정도 꾸릴 수 있어라는 말은 이미 과거의 산물이 된 지 오래다.
현재를 즐기는 소확행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퇴근 후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를 즐기거나 지금은 유행이 지나가는 인형 뽑기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거나 비싼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여행이다. 여행은 여러 소확행의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도 1년 동안 저축을 해서 1~2주씩 해외여행을 가는 지인이 꽤 있다. 이들은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이번 부산 힐링여행도 마찬가지로 소확행을 추구한다. 짠내 투어를 즐기는 편이라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게 25% 할인된 KTX 기차표일 정도지만 더 오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힐링이 목적이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즐기는 브런치도 행복하다. 신용카드 혜택으로 50% 할인을 받은 것도 작은 행복이다.
누구나 소확행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현재와 미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