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만큼은 최고입니다
문돌이입니다.
오늘은 영상 대본을 작성해봤습니다.
오늘은 퇴사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퇴사일의 아침은 평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는데요. 일어난 시간은 5시 50분. 평소와 같은 시간이 일어났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개운했습니다. 월요일이면 원래 숨이 턱턱 막히면서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고 출근하기는 더더욱 싫어야 하는데 말이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전에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무임승차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사원증을 한 번씩 확인하시더라구요. 통근버스 기사님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힘드신지 기계적으로 인사하셨는데 그것조차 왠지 친절하게 들렸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유체이탈을 해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는데요. 회사 다니는 동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갑자기 사무실이 어색합니다.
회사 건물 맨 위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만나 인사를 했습니다. 퇴사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다.
역시 회사의 소문은 초고속입니다. 이 큰 회사에서 일개 사원의 퇴사 소식이 쫙 퍼져있다니 황송할 따름이었죠 . 임직원 카드와 사원증을 반납했습니다. 퇴사 후에는 임직원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고 카드는 반으로 잘라 사원증과 함께 제출했습니다. 임직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은 정말 아쉬웠지만 지금도 아직 다니고 있는 친구와 함께 올리브영에 가끔 갑니다.
사원증을 제출하면 사무실에 못들어가서 임시 사원증을 따로 받아놨습니다. 전례가 있었는지 인사담당자가 미리 알려줬던 내용이이에요.
자리로 돌아오니 포맷을 돌려놨던 노트북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파일 삭제는 이미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예 밀어버렸습니다.
텅텅 비어 있는 바탕화면처럼 회사 생활도 끝이 났는데요. 전화기 선을 뽑고 PC 전원 케이블을 빼는 동안 선배들이 수고했다는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전화와 노트북도 직접 반납하는 프로세스였습니다.
전산실에 전화와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니 책상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개인 짐을 미리 집으로 보냈더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이제 가장 큰 일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퇴장할 것인가'
포털 사이트에 ‘퇴직일 퇴근시간’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 케이스가 있는데 회사 분위기에 따라가라는 조언이 가장 많았습니다. 우리 회사 분위기를 모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점심을 먹고 조금 지난 시간, 멘토였던 선배가 자리로 와서 이제 인사하면 될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팀장님 이하 모든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멘토, 사수 선배가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계열사로 향했는데요. 유선으로 소식은 전했지만 그래도 직접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업무 특성상 회사 내 다른 팀보다 계열사와 연계한 업무가 많았거든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분명 만날 기회가 있을 거다”
선배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회사 생활이 끝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하늘은 유난히 맑았는데요. 집에 가기 전에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부모님은 "그동안 고생했다. 좀 쉬면서 하고 싶은 일 준비해라” 라고 짧게 격려해주셨습니다.
부모님께 다시 마음의 짐을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2배로 보답하기로 다짐했습니
다.
퇴사일의 총평을 하자면 아쉬운 마음보다는 시원함 마음이 컸습니다. 좋아서 방방 뛸 정도의 느낌은 아니지만만 엄청나게 후련하고 이제부터 5시 50분에 안 일어나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