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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May 02. 2016

내가 쓴 자소서는 누가 검토할까?

대기업 퇴사를 둘러싼 100일간의 이야기

 오랜만에 자소서 DAY가 돌아왔다. 하루 종일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날이다. 몇몇 워너비 회사의 공채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기업 정보를 수집했다. 앞으로 이틀 간 4개 회사의 자기소개서를 완성해야 한다. 두 번째 취업 준비라 그런지 처음보다는 여유가 있다. 


 노트북을 챙겨서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빗줄기가 굵어진다. 동네 도서관에 가지만 추레하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스웨이드 재질의 아끼는 신발을 신었는데 낭패다. 물웅덩이에 신발이 빠지지 않도록 폴짝 뛰어서 가다 보니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됐다. 


 찬 물로 세수를 해서 정신을 차리고 자소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준비를 했다. 해당 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노트북 화면에 띄우고 종이와 펜을 준비한다. 항목별로 어떤 말로 자소서를 풀어갈지 키워드 중심으로 빠르게 정리를 했다. 대학시절부터 이 분야 저 분야 찔러본 덕분에 소재는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어느 회사의 자소서에도 넣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존재하기에 두렵지 않다. 



 필자는 인기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처럼 어린 시절 바둑 특기생으로 활동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지만 결국은 극복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고 역경을 이겨낸 경험이면서 동시에 남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성도 보여줄 수 있는 항목이다. 


 자기소개서 항목에 따라 키워드를 정리한 뒤에는 이제 족보를 뒤질 시간이다. 지금까지 지원했던 모든 기업의 자소서를 모아서 항목별로 정리해둔 인생 족보다. 키워드 별로 정리해둔 인생사를 기업의 비전과 인재상에 적합한 방향으로 맛깔나게 정리한다. 자소서라는 것을 처음 쓸 때는 며칠이 걸렸는데 이제는 하루 2개씩도 가능하다. 단, 기업 분석이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족보 내용을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하면 더 빠른 시간에 완성도 가능하겠지만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자기소개서가 기업의 인사담당자에게 먹힐 리 만무하다.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보내면 누가 검토하고 당락을 결정할까? 회사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3가지 정도로 나뉜다. 


1. 인사담당자 

 해당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전체적인 서류를 검토하고 면접 대상자를 선발하는 경우인데,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인사담당자 + 부서별 매니저급 이상 담당자
 사기업에서는 1차 서류전형에서 외주를 주는 일이 많이 줄었다. 최초 심사 과정부터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직접 뽑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인사담당자가 모든 서류를 검토할 수 없기에, 채용 계획이 있는 부서의 매니저급 직원들을 동원하여 서류 심사를 한다. 인사팀에서는 각 부서의 매니저들을 모아 회사의 채용 가이드라인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수치화된 평가 기준을 도입하여 지원서를 평가한다(필자가 근무하던 팀은 차장급 2~3명 정도가 차출되었다)


3. HR 전문 기업 외주

 공기업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필기전형이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기업은 외주 기업에 뽑고 싶은 인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이후 필기전형 합격자가 결정되면 공기업에서 면접을 주관하는 식이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서류 전형을 통과하려면 어떤 자소서를 써야 할까?


 서류 전형마다 고정적으로 참석하던 차장님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류 검토를 마치고 돌아온 차장님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자소서만 읽었으니 당연하다. 복귀한 차장님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루 동안 밀린 일을 처리했다.


 밤 9시 이후에 남아있는 팀원들끼리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릇노릇한 치킨이 한 입, 맥주 한 모금으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 서류전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통의견 1 : 자소서가 다 거기서 거기라 뽑을 사람이 없다


 수 백개의 자소서를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좋은 자소서가 몇 개 없다. 인터넷에서 합격 자소서를 베꼈는지 같은 문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됐고 그런 자소서들은 당연히 낮은 점수를 줬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막상 자소서에는 거기서 거기인 내용만 가득 차 있어 실망스러웠다는 평이다. 


공통의견 2 : 기본적인 맞춤법, 회사명 표기 오류


 자소서의 내용은 둘째치고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가 많다. 옛날처럼 맞춤법 사전을 두고 오탈자를 찾아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인터넷에 자소서 내용을 통째로 넣기만 하면 알아서 맞춤법 검사를 해주는 시대다. 맞춤법 오류는 실수가 아니라 성의가 없는 거다. 


 얼마나 복사, 붙여 넣기를 많이 했으면 회사명을 틀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잘 쓴 자소서라도 회사명을 다르게 적으면 100% 불합격이다. 붙여 넣기를 했어도 본인의 글인데 검토 한 번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공통의견 3 : 지원하는 회사, 직무에 대한 자료조사를 제대로 한 지원자가 없다. 


 지원하는 회사의 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회사를 위해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어필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지원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무엇이고 본인이 원하는 직무는 어떤 일을 하는지 정도는 자세히 찾아보고 자소서에 반영해야 한다. 


 인터넷의 자료로 부족하다면 지인을 통해서라도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물어봐야 한다. 업계 또는 지원회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자소서에 쓴다면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즘 자기소개서를 두고 자소설이라는 말을 한다. 서류 통과를 위해서라면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내는 현실을 반영한 단어다.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 내기보다는 내 기준이 아니라 회사의 입장에서 합격시키고 싶은 자소서를 작성해야 한다. 현직자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을 정리한 공통의견 3가지를 참고한다면 당신의 서류 합격률도 올라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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