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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Mar 28. 2017

퇴사 전 휴가를 내고 했던 일

chapter1

 미루고 미루던 병원 예약을 다시 잡았다. 최근 1년 동안 병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감기 몸살 정도는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해결했고 안과, 치과 치료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문돌이님, 정기검진 안내문자 드립니다. 예약 후 방문해주세요'


 단골 치과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문자를 보고서야 정기검진 날짜가 한참 지났음을 알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엑셀과 씨름하니 시력도 꽤나 나빠진 것 같은데 안경 바꿀 여유도 없었다.


 퇴사 한 뒤에는 남는 게 시간이겠지만 휴가를 사용하기로 했다. 하루를 쓸까 하다 오후 반차만 올렸다. 


 '늦잠 자고 침대에서 뒹굴다보면 금방 점심시간이니 그냥 오전에는 출근해야겠다.'


 한 일도 없이 반 일치 휴가를 날리면 아깝지 않은가? 오후 반차를 쓰면 평소와 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서 오후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다. 방문할 병원들도 서울에 있으니 회사에서 이동하는 게 더 편하다.


 평일 대낮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병원마다 예약을 했다. 피부과, 안과 그리고 항상 친절한 문자를 보내 주는 치과까지 방문할 병원은 총 3곳이다. 치과는 고정이니 그 주변에 괜찮다는 피부과와 안과를 찾았다.


 회사를 다니며 피부가 많이 상했다. 아기 피부라고 하기엔 늙었지만 그래도 동년배에 비해 관리를 잘했다고 자부했는데 지금까지 얼굴이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모른다. 담배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니 그럼 술을 마시지 말고 스트레스를 잘 푸는 게 답이라고 한다. 따로 시술을 받지 않았기에 병원비가 얼마 안나오긴 했지만 왠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피부가 좋아지겠군요?'


 안과에서는 시력검사를 했다. 역시 시력이 떨어졌다. 떨어진 시력보다 난시가 심해져서 더 문제다. 이 정도 시력에 라식을 했을 때 가장 만족감이 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좀 더 생각해 본다고 답했다. 안경을 새로 맞추는 일도 일단 퇴직금이 들어온 후로 미뤘다.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다. 안과에서 진료가 빨리 끝나는 바람이 시간이 남아서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낳아주신 덕분에 병원에 잘 안 가는 편이지만 치과는 예외다. 이를 닦는 습관에도 문제가 있지만 병원에 오는 기간을 고려했을 때 체질적으로 치석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1년 사이에 병원이 이전을 했는데 예전보다 규모가 꽤 커졌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회원들이 예약을 하고 방문하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단다. 손님들을 위해 각종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화장실에 갔더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칫솔도 구비되어 있다. 칫솔 하나를 여분으로 챙겼다. 


 '퇴사 전까지 회사에서 써야지'


  모든 진료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병원 예약시간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몰랐는데 하늘이 참 맑았다. 친구들 모두 회사에서 일할 시간이라 마땅히 부를 사람도 없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다 영화관에 갔다.


  

 대낮에 영화관에 간 게 대체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대학 시절에는 공강 시간에도 영화를 본 적도 많았다. 평일 낮에 영화관에 가면 옆 자리가 비어 있는 좌석을 골라 여유 있게 영화를 보는 맛이 있었다. 주말 만석의 영화관처럼 시끄럽지도 않아 영화에 집중할 수도 있다.


  한가한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미리 상영관에 입장하니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다른 사람을 일할 때 혼자 노는 기분이 끝내줬다. 내 휴가 쓰고 쉬는 거라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광고가 나오는데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상영관 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영화 시작 전 광고는 10분 이상이란 걸 고려하고 입장한 영화관 고수들이다. 혼자 팝콘에 콜라까지 들고 온 관람객도 있다. 퇴사를 하고 나면 저렇게 고수의 품격을 풍기며 영화를  볼까?라는 망상을 해봤다.


  영화는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이었다. 텅 비어 있는 상영관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다. 다들 편한 복장을 입고 왔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웹툰 작가도 있을까? 어느 웹툰에서 밤을 새서 마감을 끝내고 낮에 영화를 보는 장면을 봤었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늘은 아직도 맑았다. 하루 동안 즐거운 일이 가득했다. 더 이상 내 연차를 사용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구구절절 휴가를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좋아하지 않는 병원 냄새도 참을 만 했고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아 피 맛이 느껴지지만 나쁘지 않았다. 대낮에 혼자 본 영화도 즐거웠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아직도 날이 밝다는 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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