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처럼 사과와 식빵을 넣고
계란물을 입혀 식빵을 굽고 사과도 씻었습니다.
빵 세 조각에 사과 한 알씩 먹을 수 있도록 사각통에 빵을 세어 담고 집게도 준비해 가방에 넣었습니다.
사과 열여섯 개는 다른 가방에 넣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먼저 골목 안쪽에 사는 아렵과 서부의 집으로 갑니다.
제법 널찍한 땅이라 뒷마당에 큰 망고나무도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부네 집엔 물과 불이 없습니다.
물은 앞집의 것을 얻어 쓰고 골목 전봇대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다섯 형제의 이름으로 된 오래된 집을, 그저 얻어 사는 서부네와 아렵네는 월세를 내지 않는 것만 해도 좋다고 합니다.
마침, 오늘은 아렵의 엄마가 아침 일을 조금 일찍 마친 모양입니다. 집에 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렵과 아렵의 누나 아려따가 일어나면 엄마가 항상 없습니다.
아렵의 엄마는 매일 여섯시 반에 집을 나서야 하거든요.
뒷머리를 바짝 깎은 다섯 살배기 아렵이 눈을 반짝 반짝이며 저를 맞아줍니다.
아렵의 나이는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지요. 네팔 대지진 뒤에 바로 태어난 아이라 우리는 아렵의 나이를 까먹고 있다가도 금방 2015, 2016하며 아렵의 나이를 쉽게 셈한답니다.
우리는 이웃이니까요.
아렵에게 아이 주먹보다 조금 큰 사과 네 알을 건넵니다. 이 곳의 사과는 그리 크진 않지만 맛은 제법입니다.
세 조각씩 네 번, 집게로 집어 아렵 엄마가 내민 쟁반에 빵도 담아줍니다.
여긴 '주토'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더럽혀진, 침이 튀거나 묻은, 누군가 먹던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주토'가 된 음식은 먹지 않기에 달밧*도 각자 접시에 담아 먹습니다.
또 음식을 만들면서 간을 볼 때도 다른 접시나 자신의 손바닥에 조금 얹어 먹어 보는 등 다른 사람이 먹을 음식에 만드는 사람의 입이 직접 닿지 않도록 아주 조심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신경을 쓰고 더 조심해야 합니다.
후루룩 국물을 간 본 그 국자를 다시 국에 넣어 휘젓는 저를 보면 이웃 사람들은 기겁을 합니다.
저의 행동 중 '주토'어린 것들이 많다는 걸 여기 사람들이 자주 일깨워 줍니다.
같이 잘 살려면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겠지요.
다음은 아렵네와 붙어 있는 서부의 집입니다.
한쪽 눈이 먼 서부의 아버지는 오늘도 누워 계시고 그 앞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카울리 플라워를 썰던 서부가 저를 보곤 일어납니다.
오늘 반찬은 카울리 플라워 카레가 될 건가 봅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
늘 생글거리는 서부가 손짓까지 하며 얼른 들어오라고 합니다. 이젠 서부 아버지께서도 저를 알아보십니다.
서부네 집엔 사과 세 알과 빵 아홉 조각이면 됩니다.
마트에서 일하던 서부의 언니인 서비나가 오늘은 뒷집에 빨래하러 갔나 봅니다.
마트가 문을 닫아버려 일이 없으니까요.
" 가끔 만들어 가져올게. 나도 게을러서 맨날은 못해. 괜찮지?"
서부와 서부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서부가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서부의 집엔 엄마가 안 계십니다.
서부와 아렵이 사는 그 골목을 나오면 길 맞은편에 하늘색 대문이 보입니다.
그 집주인은 비수누 씨입니다. 주인은 안 살고 로헌의 할머니께서 세 들어 사십니다.
그 로헌 할머니집 뒤꼍에 오래된 방이 있는데 거기에 비까스가 엄마랑 누나랑 삽니다.
어제는 스리자나가 비까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더니 오늘은 샛노란 강황을 양념통에 담고 있습니다.
스리자나의 얼굴엔 제법 송송 여드름이 났습니다.
아빠는 외국에 일하러 갔고 엄마는 아침마다 남의 집에 청소하러 갑니다.
아침에 비까스네에 가면 방밖엔 늘 두 켤레의 슬리퍼만 있습니다.
비까스와 스리자나도 엄마 없이 내내 시간을 보냅니다.
서부 집처럼 세 식구가 먹을 만큼 건네고 저는 돌아섭니다.
비까스가 잘 먹겠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합니다.
비까스네 앞엔 작은 밭이 있는데 거기엔 옥수수도 자라고 강낭콩도 납니다.
대부분 주인인 비수누 씨가 와서 거둬가지만 스리자나의 엄마가 자주 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젠 염과 뿌자 차례입니다. 두 아이는 같은 집에 세 들어 삽니다.
집 앞에 손수레가 없는 걸 보니 염 엄마가 감자 장사를 나가신 모양입니다.
재키가 무섭게 으르렁거릴까 봐 조심조심 걸어갔는데 오늘은 다행히 없습니다.
저는 거리의 개들이 좀 겁납니다. 재키는 염네 집주인이 키우는 개인데 이빨이 날카롭고 어슬렁어슬렁 사람을 따라붙어 은근히 겁이 납니다. 그런데 염은 항상 재키를 친구처럼 데리고 잘 놉니다.
다음에 자주자주 얘기하겠지만 염은 정말 신기한 아이입니다. 원숭이보다 더 빠르게 담을 오르고 차도 따라잡을 만큼 달리기도 빠른데, 제이슨 집의 수탉은 또 무서워하거든요.
아무튼 저는 염이 참 좋습니다.
염의 아빠는 신장암을 앓다가 작년 유월 서른여섯의 나이에 떠났습니다.
그때 염은 아들이라 머리를 빡빡 깎아야 했습니다.
힌두교인들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그 아들들이 뒤통수에 몇 가닥만 남기고 머리를 모두 깎아야 합니다.
올해 1주기를 보내면서 염은 다시 또 머리를 깎았지요.
수레에 감자와 양파, 토마토, 마늘을 담아 밀고 조금 넓은 길로 나가는 염의 엄마는 여름이면 과일을 깎아 팔기도 합니다. 아침 여섯 시 반이면 늘 수레에 싣고 나갈 것들을 챙기는 염 엄마를 볼 수 있습니다.
염과 염의 누나인 뿌스빠도 엄마 없이 둘이서 아침을 먹습니다.
이제 딱 한 집 남았네요. 뿌자와 루자가 사는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면 뿌자가 열어줍니다. 붉고 두꺼운 커튼을 걷지 않아 방은 후덥지근합니다.
갓 잠에서 깬 루자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 얼굴을 닮은 루자는 정말 양파처럼 동그랗습니다.
뿌자가 가져온 쟁반에 마지막 남은 빵과 사과를 담습니다.
루자가 잠이 덜 깬 채 말합니다.
"땡큐, 린꼬 아마" 고맙습니다 린이 엄마.
"훈처, 디디썽거 미토거레 카우." 그래 언니랑 맛있게 먹어.
해도 뜨기 전, 다섯 시에 엄마가 나가면 뿌자가 방 안에서 문을 다시 잠급니다.
해가 뜨고 또 뜨서 뿌자와 루자가 잠자는 창문 앞을 따끈따끈하게 데워도 두껍고 붉은 커튼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돌아서서 나오고 난 뒤에서야 커튼을 걷고 열 두시나 되어야 돌아오는 엄마와 함께 먹을 밥을 두 아이가 준비할 겁니다. 뿌자와 루자에겐 아침부터 아니 아니 새벽부터 엄마가 안 계신데, 아빠는 매일매일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뿌자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야 알려 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볼이 새빨간 뿌자가 꼭꼭 숨기고 싶어 했으나 제가 알고 만 이야기라서요.
물론 뿌자는 지금도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뿌자에게 어떻게 꺼내야 할지 저도 계속 생각 중입니다.
그러니 궁금하셔도 좀 기다리셔야겠어요.
오늘 아침, 사과와 식빵을 아이들에게 주려고 다니다가 많기도 많았던 제 꿈 생각이 났습니다.
소방관도 되고 싶었고 제빵사도 되고 싶었고 발레리나나 첼리스트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체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오늘 가방에, 편지처럼 사과와 식빵을 넣고 집집마다 다니다 보니 그만 제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네팔의 산간지역엔 감자나 옥수수가 주식인 곳도 있지만 대부분 네팔에서는 밥을 먹는 편입니다.
쌀밥에 뭉근하게 끓인 콩국인 '달'과 떠러까리라고 부르는 반찬을 함께 곁들인 밥이 달밧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