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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27. 2024

이불속 그 아이를 만나다.

그것은 통찰

나는 네 자녀가 전부 미성년자일 때 참 많이 힘들었다. 나는 힘든 이유를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저놈이 말을 안 들어서. 저놈이 고집이 세서. 저놈이 유별나서. 그중에 가장 힘든 부분은 아이들이 싸울 때였다.


큰 아이 말로는 자기들끼리 싸울 때보다, 엄마가 싸운다고 혼낼 때가 더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싸움이 힘들지. 엄마가 혼내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첫째 둘째는 어찌어찌 세월이 흘러 키웠다. 셋째, 넷째를 키울 때도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여전히 아이들이 싸울 때 뜯어말리며, 싸움은 양육 중에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방에 있고 거실에 아이들이 있었다. 거실에서 투닥투닥 셋째 넷째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이들 때는 힘이 좀 있어 도깨비방망이로 바닥을 치거나 엄청 무섭게 해서 싸움을 종료시켰었다.


셋째 넷째 때는 매일 힘들어 거의 누워 지냈다. 그날도 안방 이불에 엎드린 채로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야. 그만 싸우라고. "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투닥투닥 멈추지 않는다. 도저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서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체력이 아니니 안방에서 엎드린 채로 거실을 향해 소리친다.


"야. 그만 싸우라고 안 들려?"


아이들은 엄마의 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못 들은 체하는 건지 계속이다.


나는 사력을 다해 거실을 향해 소리친다.


"제발 좀 그만들 싸우라고 오. 이놈들아 아."  


쇳소리로 안간힘을 다해 소리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왜지? 뭐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워서 힘도 없으면서 필사적으로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는 내 모습이 간절하고 가여웠다.


그 순간 거실 저 멀리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가 어린 시절 이불속에서 들었던 그 소리.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느꼈던 공포의 순간으로 오버랩되었다. 싸우는 소리는 마치 나의 배를 누가 훅 하고 계속 때리는 것 같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어린아이였던 내 모습이 되어서 그때와 똑같이 고통받고 있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아이였던 내가 보였다.


 '아. 여태 애들의 싸우는 소리는 나에게는 고통의 소리였을까?'


 '나는 어쩌면 고통받는 어린 시절의 나를 구하려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움을 말렸을까?"


이미 아이들의 싸움은 아무렇지 않게 종료되었고 시시덕 거리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고통받은 상태의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저 봐 쟤네들은 다시 또 놀잖아. 그때의 싸움이랑 같지 않아.'


그제야 내가 애들을 키우며 그렇게 필사적으로 개입하고 말렸었는지 이해되었다. 오히려 개입하면 할수록 더욱 사이가 악화되었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그제야 내가 왜 그렇게 아이들의 싸움에 예민하고 절망했는지 이해되었다. 나에게 싸우는 소리는 '고통'의 소리와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니 싸움의 원흉(?)인 아이들을 그토록 심하게 혼낸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싸움보다 엄마의 반응이 지나치다고 느끼고 더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그저 싸움은 나에게 고통, 전쟁, 파국이었던 것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찬찬히 나의 지나왔던 행동들을 되짚어보았다.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네 살 때 엄마랑 목욕탕에 간 적이 있다. 큰 목욕통에 들어갔다가 발이 미끄러져 목욕탕 물에 빠져서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엄마가 놀라서 꺼내주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너무 놀라고 죽을 것 같았다. 물속에 빠졌던 그 몇 초 동안 엄청난 물의 압박으로 숨을 못 쉬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애들이랑 수영장 가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무서웠다. 애들이 수영장에 가서 "엄마도 들어와 들어와. 그래야 재밌어." 해도 되도록 들어가지 않았다. 셋째가 하도 물을 좋아하고 물속에서 엄마랑 노는 것을 좋아해서 마지못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물을 충분히 좋아하지 않는다. 나랑 다르게 물 만난 물고기 같은 셋째가 신기하다.


그때가 그랬다. 큰애 둘째 사춘기, 셋째는 초등학생, 막내는 유치원 때.  분명히 현실 세계를 살고 육지를 걷고 있는데, 마치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호흡이 되지 않았다. 귀는 막히고 사방의 공기가 물처럼 나를 압박했다. 살기는 사는데 엄청난 물의 압박을 견디며 겨우겨우 한 걸음씩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심리 상담 도움을 요청하였다. 무료로 해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싸움에 관한 나의 울었던 경험을 말씀드렸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아이들의 싸움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말리지도 않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고 놀았다. 한발 떨어져서 보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과 지금의 상황을 혼동하는 나의 착각을 인지하고 더 이상 확대해석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애들 싸움을 몸서리치게 싫어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싸우는 소리는 전쟁의 서막이었고 고통의 시작이니 어떡해서든 중지시키려 애쓴 것이다. 어린 시절과 동일시하고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상담사님께 그 이야기를 하니 그것은 '통찰'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하나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어린 시절의 고통을 느낀 후 오히려 자유로워진 것. 내가 그토록 아이들의 싸움을 싫어한 이유를 찾은 것. 그것이 통찰이구나 알게 됐다.


한 가지는 풀렸다. 그래도 많은 부분의 총체적 힘듦으로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건지려 건강가정 지원센터의 무료상담을 열심히 받았다.


 그거라도 받으니 잠깐 살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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