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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26. 2024

나는 매일 밤 베란다에서 소주를 마신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소리치고 울다.

나는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참 싫어했다. 아니 극도로 싫어했다. 내가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첫째와 둘째는 어려서부터 참 많이  싸웠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뜯어말리느라 참 힘들었다. 중재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고 싸울 때마다 도깨비방망이 장난감으로 바닥을 쾅쾅 치며 위협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해봤자 그때뿐이고 아이들은 또다시 싸우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내 종아리를 내가 때리며 이거 봐라 엄마가 너희들 잘 못 키워서 그런 거다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잠시 무서워할 뿐 언제나 도돌이표처럼 각종 이유로 싸웠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힘들게 여행을 가서도 정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싸우고, 밥 먹을 때도 평화롭게 먹기 힘들었다. 세상 모든 일은 내 노력대로 되는데 양육만큼은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절망스러웠다.


나는 아이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못돼 처먹어서 저런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자꾸 싸우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미웠다.  나는 평화를 원하는데 조금 참을 줄 모르는 저들이 잘못됐다고 아이들을 비난하고 헐뜯었다. 그러니 아이들하고 사이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공원에 가서 통곡을 하고 소리를 치며 울었다. 엄마엄마 부르며 울었다. 그때 여섯 살이었던 셋째가, 지금은 중학생인데 그 모습을 기억하고 말할 때가 있다.


"엄마 그때 우리 OO 아파트 살 때 공원에서 크게 울었잖아."


공원 후미진 사람 없는 곳에서, 여섯 살 셋째와 세 살 아기였던 넷째를 유모차에 세워놓고 세상에서 제일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파산 상태였고 남편도 자주 오토바이 사고가 났던 때라서 아이들이랑 갈등이 일어나니 버티기 힘들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열 시경에 아파트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베란다로 나가서 울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술 마시고 이상해지는 아버지가 싫었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술자리가 좋았지만 아버지 닮기 싫어서 이십 대에 끊었었다. 끊었던 술을 마흔이 넘어서 아이들이 버젓이 있는데 먹은 것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베란다에서 몰래 마셨다.


고등학생 첫째 아이 방은  공부를 하는지 뭐 하는지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지만, 어차피 엄마가 뭐 하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베란다에서 안주도 없이 술을 먹다 보면 잠시 후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것 같았다.


아버지 때문에 죽다 살아났어도 잘 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죽지는 못하고 사람이 미쳐가는구나 싶었다. 거의 반 정신 줄을 놓으며 아득해진다.


어느 날 아이들과 실랑이하고 난 직후의 일이다.  그냥 전기선이 끊어지듯 툭하고 정신이 놔졌다. 세상과 내가 다르게 움직이는 거다.


세상이 정박자라면 나는 한 템포 느리게 반응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말을 시키는 데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말이 안 나오고 혀가 마비된 듯 어버버 거리며 어눌해졌다. 그 순간 '아, 이래서 사람이 미치는구나.'알게 됐다. 세상 제일 씩씩했던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구나. 무서웠다.


나는 그렇게 얼마 동안 아이들이 잠든 후 편의점에 가고 소주를 사 오고 베란다에서 마셨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아득히 정신을 놓고 먼지처럼 사라져서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의 끝으로 가겠구나 할 때, 막내와 셋째, 아이들의 소리가 손톱만 하게 들렸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니 멀리 떠나려던 정신이 다시 현실로 잡아끌어 당겨졌다.


그때 큰 아이가 베란다에서 나를 발견하곤 묻는다.


"엄마 뭐 해."

"엄마 너무 힘들어서 너희들이 너무 속상하게 해서 술 마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널브러져서, 살기 싫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 그럼 나아져?"

"나아지는 건 없어. 이거라도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아 할 수 없이 힘들어서 먹는 거야."

"엄마 근데 술 마시면 잠시 기분이 나아지는지는 모르겠는데 건강에는 안 좋아. 엄마 힘든 거 풀려는 건 알겠는데 건강에는 안 좋은 거네."


그 순간  부모가 돼가지고 이런 식으로 힘듦을 푸는 모습을 들킨 게 창피했다.


만약 "엄마 술 먹지 마." 그랬으면 반골 기질이 있는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거다. 이미 아기들 소리에 현실 세계로 복귀한 정신줄에, 큰아이의 한마디로 나는 그 후로 다시는 다시는 술을 먹지 않았다.


















아. 큰애랑 맥주 조금은 먹었네. 아 캘리 친구랑 조금은. 맥주 조금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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