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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28. 2024

사기꾼이 되느니 보험아줌마를 하자.

맨땅에 헤딩

나는 큰애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고맙게도 큰애는 한 번에 대학에 붙어주었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통학할 수 있는 곳에 합격하였다. 고맙고 기특했지만 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파산 상태에 애들 4명을 키워야 했다. 4년 동안 무사히 큰애를 졸업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맞벌이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자장면집 운영하며 생활하기 어려워 보육교사로 일했었다. 다시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려니 자신이 없었다. 집에도 애들이 4명이나 있는데 직장에서 애들 돌보고 여러 잡무에, 차량 운행, 서류 업무 등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이집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고용복지센터를 방문하였다. 보육교사 자격증 외에 다른 직종으로 취업하려니 마땅하지 않았다. 센터에서 몇 개월간 취업성공패키지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구직자에 맞는 프로그램 교육도 시켜주고 취업도 연계해 준다. 조기 취업 성공 시 수당도 받는 좋은 제도이다.


센터에서 먼저 워크넷에 구직등록을 하고 적성검사를 완료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적성검사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검사였다. 다면적인 적성을 파악하는 검사인 것 같았다.

 

나는 적성검사를 완료하였고 성격에 맞는 직업을 살펴보았다. 선생님, 의료 코디네이터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사기꾼'이었다.

 

 '사기꾼?'


아니 무슨 사기꾼이 직업이란 말인가.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직업 결과가 사기꾼이 나와서 너무 황당했다. 아주 기분이 나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로 하고 다시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사기꾼 그 옆에 보험모집인도 있었다.


나는 사기꾼이 될 바엔 보험모집인이 돼보자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여러 직업을 해보았지만 보험은 안 해봤다. 관심도 없었고 영업은 안 맞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보험 직업을 하지?'  나는 우리가 자장면 집을 운영할 때 화재보험을 들었고. 우리 애들 보험도 들어준 H 회사의 설계사 아줌마가 생각났다.


 나는 H 설계사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험설계사 직업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


보통 보험설계사는 지인의 권유로 교육받고, 자격증을 따서 영업을 하는 것이다. 보험을 팔면 그것이 월급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아는 지인이 하나도 없는데 무식하고 무모하게 사기꾼보다는 보험설계사가 나을 것 같아 그렇게 보험 아줌마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편견 없이 믿고 의심을 잘하지 않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면 당했지 사기를 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적성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와서 정말 황당했다. 위기 대처 능력이 좋아서 그런가 하여튼 지금 생각해도 기분 나쁘다.


보험설계사도 마찬가지다. 막상 내가 해보니까 맞지 않는 직업이었다. 적성검사가 너무 공신력이 없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은 모르고 딱 겉으로 드러난 검사 결과만 봐서 그런다. 그런 단순한 검사 결과만 믿고 보험설계사를 해보겠다고 한 나도 웃기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H 회사에 자진해서 들어가서  보험 아줌마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보험설계사는 처음 3개월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한다. 이때까지 참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교실에 앉아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니 좋았다. 교실에서 처음엔 서먹했던 사람들과도 친해져서 같이 공부하니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했다.


자격증을 따고 4개월 차 이후에는 본격적인 영업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권유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이때까지 가정의 어려움으로 동굴에 들어가 있었으니 아는 지인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뭄에 콩 나듯 몇몇의 지인에  의지해서는 발전이 더뎠다. 나는 의지할 부모형제도 없다 보니 막막했다. 오히려 조금 알던 지인이나 오빠도 보험 한다고 하니 더 외면받았다. 조금 하다가 그만둘 거라고 지인에게서는 거의 보험이 나오지 않았다.


교실에서 공부할 때는 내가 일등이었는데 막상 본게임에서는 공부에 제일 관심 없고 결석도 자주 하던 동료가 화려한 인맥으로 보험을 툭툭 잘도 체결해 왔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포기'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오기가 생겼다. 포기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쌩으로 고객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사탕과 명함을 작게 포장해서 퇴근하면서 우리 동네 가게에 돌렸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사탕을 놓고 오는 일은 많이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나는 오히려 우렁차게 인사하고 들어가 사탕을 놓고 왔다.


어느 분은 커피를 한 잔을 타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어쩔 땐 본인의 가정사를 끝도 없이 늘어놓으시는데  거의 시간만 뺏길 뿐 계약으로 연결된 적이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성실한 모습과  애쓰는 내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회사에서 CRM(전화 고객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회사로 전화 오는 고객들의 상담을 나에게 전적으로 준 것이다. 이분들은 거의 보험을 들려고 마음먹고 우리 회사에 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계약으로 체결되었다.


개척한 지 한 두어 달 되어갈 즘 무렵에 버스정류장 앞에 안경점이 새로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다. 나는 어쩌면 화재보험으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명함을 놓고 왔다.


안경점의 인테리어 공사가 완성되어 갈 때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경점 사장님이었다. 화재보험을 들려고 하는데.. 하시면서 본인이 원하는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며 가게에 설계를 해갖고 오라는 거다. 다른 D 보험사도 비교해서 좋은 쪽으로 하시겠다는 거다.


개척한 지 두 달이 되기 전에 소식이 온 것이다. 너무 기뻤지만 D 보험사와 비교해서 하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내가 채택되어야 한다. 나는 고객이 말했던 내용을 분석하였다. 아무리 좋은 보험을 권유해도 고객은 본인이 원하는 게 있다. 나는 고객의 말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설계를 완성하였다.


팀장님은 고객에 좋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것으로 한 개 더 가져갔다.  그러니까 팀장님 스타일로 세팅된 것. 내가 설계한 것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 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서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안경점으로 향했다. 마치 전장을 나서는 군인처럼 양쪽에 총칼이 아닌 설계서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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