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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29. 2024

나는 보험설계사로 성공하지 못했다.

보험이고 나발이고

나는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 발을 내딛는데  휘청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설계한 것을 보여주고, 어쩌면 개척으로 하는 첫 계약이 성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사장님이 약속된 시간에 기다리고 계셨다. 완성된 안경점 인테리어는 아주 깔끔하고 화사했다. 하나하나 전시되어 있는 안경들이 고급 져 보였다. 사장님이 안내하는 자리에 최대한 매너 있게 앉았다. 바로 전에 D 회사 설계사님이 왔다 가셨다는 것이다. 혹시 마음을 정하셨냐고 하니 나의 설계를 보고 결정을 내리신단다.  앞의 분은 베테랑 설계사님이라고 어필을 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나 같은 신참이 해온 설계를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처음 생각과 달리 팀장님이 설계해 준 것으로 설명을 드렸다. 사장님의 표정이 뭔가 오묘하다. 하시겠다는 건지 마시겠다는 건지 고개를 갸웃하신다. 바로 전 D 회사 설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뿔싸.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방에 들어있던 내가 설계한 것을 꺼냈다. 마치 준비해 온 양 사장님께 보여줬다. 사장님이 중요시하는 것 가게 인테리어 및 재화의 가격에 최대한 맞춰서 책정하고 납입 기간은 짧게 한 설계도를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사장님께 보여드렸다.


보험회사에서는 납입 기간이 긴 것이 이익이 될 것이다. 인테리어나 재화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보험료가 낮아지니 고객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하니 채택할 가능성이 높으니 팀장님도, D 회사도 그렇게 설계해 온 것이다. (나만의 분석이니 틀릴 수도 있음)


나는 막상 화재가 나면 인테리어나 재화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되면 보험금 혜택이 적어질 수도 있고, 납입 기간은  짧은 것이 좋다고 한 고객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 선 설계였다.


내가 준비해 온 설계를 보여드리고 설명을 드리니 사장님은 두 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것으로 계약합시다." 하였다.


브라보!!


개척한 지 한 달이 넘어서 두 달이 되기 전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안경점을 나오는 내 발걸음은 둥둥 떠서 날아갈 것 같았다. 당장 회사에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D 회사 설계사님도 제치고 우리 팀장님도 제치고 나의 설계로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나는 일 년을 근무하는 동안 회사의 배려로 CRM(전화 고객상담)을 6개월을 하였다.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개척 성공기를 신입 직원들에게 강의도 하였다.


그렇게 오래오래 근무할 줄 알았는데... 나는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열심히 했던 보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무래도 네 아이를 키우며 보험 개척한다고 무리한 모양이었다.


한 걸음도 못 걷고 설거지도 못할 정도로 문제가 생겨 보험이고 나발이고 이러다간 애들 못 키우겠다 싶어 그만두었다.


그렇게 삼 년 정도를 아무것도 못하고 집안 살림만 겨우겨우 하게 되었다.

 

너무 무리했었던 모양이다. 보험회사에서 벌었던 돈은 이렇게 저렇게 다 없어졌다. 손해는 안 봤다. 그런데 건강을 잃고 나서 돈보다는 살아있는 것에 집중하는 인생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우리 큰애는 다자녀 국가장학금 제도가 있어서 거의 등록금을 안 냈다. 책값이나 용돈 등은 필요했지만 등록금이 거의 안 나가서 큰 걱정은 덜 수 있었다.


괜한 걱정으로 몸만 축난 것이다.


나는 보험 설계사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에도, 지금까지 이 직업으로 지속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바로 워크넷 적성검사가 잘 못 짚었다는 것이다.


나는 고객을 발굴하고 개척하는 것까지는 해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나의 고객들을 평생 관리해야 되는데 이게 많이 부담이 됐다. 다른 상품들은 제품을 팔면 끝인데, 보험은 계속 관리해 주고 신경 써줘야 한다. 이것이 나를 두 다리를 뻗고 잠을 못 자게 했다.


한마디로 '새가슴'이었다.


또 한 가지는 너무 불필요하게 고객 사정에 이입하는 것이다.


 '저 고객이 이 금액이 부담될 텐데.'

 '저 고객은 이 보험이 딱히 필요 없는데.'


어느 정도 고객 입장에 서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도하게 이입하니 문제였다.

  

보험회사에서는 신상품이 나오면 그달에 엄청 많은 혜택을 설계사들에게 준다. 계약만 하면 그 달에 월급이 두둑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혜택이 많아도 내가 그 보험이 필요치 않다고 느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영업사원의 자질이 하나도 없는 거다. 동료들은 이번 달 계약하면 월급이 얼마 들어오네 하고 잘도 계산하는 데 나는 숫자에 약하고  필요성도 못 느끼면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 달에 계약 한 개만 더하면 월급의 클래스가 달라지는데 나는 그 한 개에 연연하지 않았다. 참 이럴 땐 똥배짱이다. 그러니 돈 버는 능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 번은 CRM(전화 고객상담)으로 만난 고객과 비교적 큰 금액의 계약을 체결하고 사무실에 돌아온 적이 있다. 지점장님이 잘 못 계약한 거 아닌지 금방 해약할 것 같으니 잘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고객과 잘 상담하고 계약하고 온 것인데 왜 그럴까 의아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적은 금액의 보험만 체결해 오니 지점장님은 걱정을 하셨던 거다. 나는 항상 고객에게 최소한의 보험만 권유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니 딱 거기까지만 권유했던 것이고 고객의 보험료를 최대의 효과로 최소한 낮추는 방법만 연구했으니 회사 입장에서 좋은 설계사는 아닌 거다.


이 고객은 아들에게 물려준다고 본인이 질병사망보험료에 어느 정도 책정하길 원하셨다. 그러니 보험료가 비쌌던 거다. 꽤 오래 계약을 유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머리는 할 만했는데 몸이 신호를 보냈다.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했다. 더 이상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에 힘이 빠졌다. 이러다간 내가 그토록 소중히 지켰던 가정도 못 지키게 생겨서 당장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거의 삼 년을 가정에서만 지냈다. 집, 교회, 집, 교회. 딱  그렇게만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나는 돈을 버는 능력이 없는 사람 같다. 성취욕구는 강한데 돈 버는 욕구는 낮다. 생겨 먹은 게 그런 거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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