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임대를 분석하다.
집 구하기 힘들 때 LH
나는 부자 되는 방법은 전혀 모른다.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잘 모른다. 오십이 넘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인생의 밑바닥에서 그래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아는 것 같다.
자장면 집을 폐업하고 가지고 있던 깡통집들을 다 팔고 나니, 남은 건 월세 보증금 천만 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파산신청을 했다. 살면서 내가 파산 신청을 하다니,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나이 마흔네 살에 가진 재산이 천만 원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지금 나의 인생 성과는 제로 세팅이 된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 키우며 돈은 계속 들어갈 거고, 건강은 더 안 좋아질 거고, 폐업으로 실업자 신세인 거다. 마흔네 살에 가진 돈 천만 원이라는 것은 바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함으로 모든 재산도 날아가고 아이들도 사춘기라 말을 안 듣는 것 같고, 막내 아기들도 한참을 더 키워야 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내 인생성적표는 빵점이구나. 아니 마이너스구나.'
비슷한 나이에 결혼한 주변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직업도, 자녀양육도, 돈도 가정의 화목도 뭐하나 성공한 것이 없는 실패자가 된 것 같았다.
자존감이 한없이 내려가고 누구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폼에살고 폼에 죽던 내가, 까칠한 도시여자 마인드인 내가. 세상 제일 무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감상은 접고 이제 천만 원 보증금으로 아이 넷과 살아갈 집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정말 쉽지 않다. 최소의 월세로 집을 구해야 했기에 집을 살 때보다 더 어려웠다. 부동산에서 월세가 아주 싼 집을 가보면 우리 여섯 식구가 살 수 없는 형편없는 집이었다.
우리가 살 집은 최소 방 세 개는 있어야 하는데 월세 30은 아예 없고 최소 40 이상은 주어야 했다.
겨우겨우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 월세를 구했지만 매달 월세를 감당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남편은 폐업 후 자장면 배달원으로 취직했지만 여섯 식구 살기에 빠듯했다.
나는 월세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다가 LH의 여러 형태의 집들을 알게 되었다. 전세 임대, 매입 임대, 각종 임대 아파트들..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이것도 공부를 하고 분석을 해야 알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LH의 모집공고를 지난 공고까지 분석하며 언제 공고가 나고 어떻게 입주할 수 있는지 파고들고 공부했다. 이렇게 한 건 아이들과 좀 더 싸게 좋게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알아보다가 드디어 전세임대 공고가 났다. 전세임대는 LH에서 전세보증금(일억 이천 정도)을 지원해 주고 우리는 낮은 저리의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 당첨만 되면 월 부담금이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지금보다 좀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전셋집 도배도 LH에서 해준다.
우리는 당첨되었고 32평 아파트로 이사 갔다. 도배도 새로 하고, 집이 넓어지니 좋았다. 그렇게 일 년 살다가 매입 임대 빌라 공고가 나서 지원했고 당첨되었다.
매입 임대는 LH에서 아예 새로 지은 빌라를 빌려주는 제도로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하다. 20년까지 살 수 있다.
이 빌라에서 우리는 6년을 살았다. 그 6년이라는 기간은 파산하고 복원되는 기간과 겹쳤다. 우리는 신용카드도 없이 정말 6년 동안 네 명의 아이들과 살았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잘 살았다. 지지고 볶고 복닥복닥 살았다.
막내의 기억 속의 첫 집이다. 막내는 가끔 그곳에 살았던 때 이야기를 한다. 참 편리한 집이었다. 월세도 정말 저렴하고 집도 꽤 넓었다. 29평인데 거실과 방 세 개가 컸다. 1층이 주차장, 우리 집은 2층이었다. 막 뛰어도 상관없는 집이었다. 나가자마자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5분 거리에 슈퍼도 있고 공원도 있다. 얼마나 감사한 집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런 LH 집 구하는 정보를 주변의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드렸다. 내가 살려고 분석했던 일들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으니 각가정의 사정에 맞게 잘 도와드렸다.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하고 뿌듯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거주환경이 좋아지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 가정의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건너 건너 지인이 이사를 앞두고 돈이 없어 걱정이 많으셨다. 가정도 어렵고 장애도 있으시고 어떻게 접수하는지도 모르셨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서류 작성하는 것부터 동사무소에 접수하는 것까지 거의 동행해서 잘 진행시켜 드렸다.
나중에 당첨이 되셔서 최신식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로 이사 가셨다. 이삿짐을 들여놓은 집을 구경했는데 비앙카타일 목욕탕도 두 개에다가, 새 싱크대가 산뜻했다. 어찌나 환하게 웃으시는지 내 마음에도 햇살처럼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분은 그 일이 감사했던지 우리 집에 오랫동안 먹거리를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먹거리가 삽시간에 없어지는 아이들이 넷이나 있는 집이니 참 보탬이 많이 됐다.
그 후로도 몇 분 도와드렸다. 소문이 나서 많이 물어보러 오신다. 그러면 나는 신나서 가르쳐드린다. 할 수 있는 한 접수까지 도와드린다.
또 나의 도움으로 이사 갔던 분들이 좀 더 사정이 괜찮아져서 더 좋은 조건의 집으로 업그레이드하실 때 잘 알려드린다.
어딘가에는 이런 집이 있는 줄도 모르고 공고문도 볼 줄 모르고 접수하는 방법도 몰라서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 당연히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다. 내가 아이 넷이랑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즐겁게 도와드렸다.
이 일은 나에게 도전과 대단한 성취감을 주었다. 어려운 가정이 나의 작은 도움으로 눈에 띄게 거주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보는 것은, 뿌듯함을 넘어서 기분이 무척 좋다.
'다른 사람의 거주환경이 좋아지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 가정의 어려움의 인생궤도를 수정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사람의 거주지가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궤도가 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