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나는 살고 싶었다.
아버지와 트라우마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무서운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가까이할 수 없는 세상 제일 무서운 존재였다. 항상 기분 나빠 있었고 말 수가 없었고 자기 기분 데로 엄마와 자식들을 때리기 일쑤였다.
잘못해도 때리고 그냥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와 자식들을 죽일 듯이 때렸다. 생각해 보면 본인이 무언가에 기분이 나빠서가 주된 이유였는데 맞는 이유라도 알아야 다음에 조심할 텐데 다짜고짜 죽일 듯이 때리기만 했다.
우리는 때리는 이유를 추측을 해야 했고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아버지 분풀이의 대상이었다.
퇴근한 아버지의 눈을 보며 혹시 심기가 불편한지 눈치 보기 바빴다.
우리를 때릴 때 아버지의 눈은 우리가 보는 평범한 사람의 눈이 아니라 살기 가득한 무서운 소름 끼치는 눈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엄마를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참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맞는 것을 보는 것. 보지 않아도 맞는 소리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아버지만 없으면 우리는 행복할 텐데.'
아버지가 불행의 원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부터 혼자서 교회를 다니며 마음을 추슬렀지만 아버지는 나의 원수였고.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해도, 단 한 사람. 아버지는 절대로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폭력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아홉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에 일이다.
엄마가 다른 집에 입주 가정부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문제의 그날 밤 방에는 아버지와 내가 있었고 아버지는 나를 죽이고 본인도 죽을 생각을 하셨다.
아버지가 내 목을 조르고 죽이려는 것을 직감 한 순간 아버지에게 간절히 살려 달라고 외쳤다. 아버지가 목을 조를수록. 이제 목구멍에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숨을 쉬고 싶지만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이 쉽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죽음의 셔터가 내려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살.. 살려 달라고 외치지만 희미하게 의식을 잃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완전히 정신을 잃으려는 찰나에,
그 순간 아버지가 손에서 힘을 뺐다.
나는 다시 숨을 쉬었고, 나는 살았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이 변할까 봐 간절히 살고 싶다고 소리쳤다.
"아버지 사랑해요."도 외쳤다. 살기 위해서 사랑하지도 않는데 비겁하게 사랑한다고 외쳤다.
나는 간절히 살고 싶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다르게 잘 살 텐데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 번을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절한 것 같다.
아침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깜짝 놀랐다. 이불이 다 젖고 온몸이 땀범벅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입원을 하였다.
나는 우리 집 사정을 그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복잡하고 굴곡진 삶을 누구에게도 오픈하기 싫었다. 나의 감정 기복이 심한 것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한 모습이다. 누구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이렇게 어두운 면이 있는 사람을 좋아할까 싶어 꽁꽁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로 인해 죽음의 끝까지 가서, 그렇게 살고 싶었건만 나는 자녀들을 키우며 죽고 싶을 만큼 살기 싫었었다. 아버지와 닮은 소름 끼치는 폭력적인 면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나를 죽여서라도 아이들과 나를 분리시키고 싶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그렇게 증오했는데 아버지가 하던 욕을 하고, 아버지가 하던 폭력을 하는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다.
나는 간절히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나의 반대적인 성향이 나왔을 때, 나는 나를 정말 용서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밝고 긍정적이고 똑똑해 보이지만 우울의 늪에 빠질 때는 한 발자국도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를 바꾸는 것이 죽는 것보다 좋은 방법인 것을 알고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해결하려 노력한다. 때때로 감정의 격차가 너무 커서 어쩔 땐 나 자신도 헷갈릴 때가 많다.
나는 주로 우리 가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거나 아이들이 부정적인 소리를 하기만 해도 바로 우울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온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느낀다.
어린 시절 극단적인 상황을 자주 겪다 보니 갈등과 부정적 언어는 나에게 전쟁 태세를 갖추라는 신호 같았다.
이제 나는 이성적으로 신호를 바꾼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부정적인 말의 이면에 힘들다는 것이지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가령 아이가 학교 가기 힘들어서 '죽겠다'하면 나는 바로 나락으로 빠진다.
'내가 손댈 수 없는 그곳으로 가겠구나.' 너무 고통스럽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죽겠다는 힘들다의 다른 표현이지 진짜로 죽겠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내가 구원해야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여태껏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다. 자녀를 구원하고 남편을 구원하고, 힘든 사람, 불화인 사람을 도와주려 애썼다.
어쩌면 구원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나를 구원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디서나 평화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변의 불화를 잠재우려 애를 쓰고 유머를 쓰고 나의 밝음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야 아버지가 없는데도 아버지랑 같이 살았을 때보다 더 힘들까.
나는 이제 우울의 늪에 빠지려고 할 때 나에게 말한다.
'네가 틀렸어. 지금 하고 있는 네 생각이 틀렸어.'
죽음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