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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Jul 17. 2024

다섯 명의 새엄마가 고맙다.

엄마가 나간 후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무섭다. 나는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분노를 폭발했다. 엄마를 찾아내라고 화를 냈다. 엄마 나간 화풀이를 나한테 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엄마는 없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궁리를 하더니 나를 데리고 나갔다.


 "너 엄마랑 어디서 어떻게 갔는지 고대로 말해라."


아버지는 처음부터 어떻게 가게 됐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택시로 용산역으로 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대로 똑같이 택시에 나를 태우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분노에 찬 아버지와 같이 택시 뒷좌석에 타서 용산역으로 가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엄마를 찾는다 해도 무섭고, 찾지 않는다 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우리는 용산역에서 내렸다. 어둡고 음습하고 그 어느 때보다 추위가 내 온몸을 감쌌다. 아버지와 걷는 한걸음 한 걸음이 마치 얼어붙은 도로만큼이나 경직돼 있다.


엄마와 손을 잡고 걸었던 그 골목길을 샅샅이 찾았다.


나는 원래 길을 잘 찾는 아이다. 이런 길 쯤은 아주 잘 기억한다. 그런데 바로 어제 왔던 곳인데 되게 헷갈렸다.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저기가 여기 같고 잘 모르겠다. 아버지랑 계속 계속 같은 골목길을 맴맴 돌뿐이었다.


마침내 한 골목길에 들어서니 한 곳이 약간 낯이 익었다.


 "여기서 엄마랑 밥 먹었어요."


나는 엄마랑 밥을 먹었던 식당을 겨우 찾아내었다. 아버지는 씩씩거리며 가게를 살펴보고 왔다 갔다 한다.


그러고는 또 이 골목 저 골목을 아버지와 왔다 갔다 했다. 끝내 우리가 머물렀던 여관은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결국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했다.


'엄마 없이 이제 아버지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두렵기도 했지만, 엄마가 내 눈앞에서 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보는 극단적인 상황은 이제 없는 것이다.


잠시만이라도 극단적 무서움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 집에는 아버지와 나, 작은 오빠가 남은 것이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무서워 일찍부터 나가 살았다.


그 후에 아버지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작은 오빠가 기절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나가시고  혼자 사는 아줌마를 사귀고는 집으로 데리고 와서 새엄마가 될 거라고 인사시키곤 했다. 내가 5학년 정도 됐을 때부터 아줌마를 데리고 왔다.


아버지와 아줌마는 사춘기에 접어든 나를 은근히 신경 썼지만 나는 금세 적응하고 누가 됐던 나쁘지 않게 지냈다.


참으로 신기한 건 아버지는 내가 볼 때 아무 매력이 없는데 여자들을 잘 도 사귀고 데리고 오신다는 거다. 키도 작고 돈도 없고 자상하지도 않은데 끊이지 않고 잘 데려오셨다. 물론 괴팍한 성격 탓에 금방 다들 도망갔지만 누가 오고 가던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줌마들과 사이가 안 좋을 때면 괜한 화풀이를 나한테 하곤 했다.


첫 번째 새엄마는 성남에 살아서 성남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 엄마는 한 달에 한두 번 오셨는데 좋으신 분이었다. 반찬도 잘 만들어 주시고 특히 무생채를 맛있게 하시고, 만드는 법도 알려주셔서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겨울에 겉옷도 없이 지내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처음으로 빨간색으로 소매에 털이 달린 코트와 그에 어울리는 바지도 사주셨다.


엄마가 나간 후 처음으로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참 좋아서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보다 조금 연상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엇보다 아버지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이분을 통해서 많이 들었다. 아버지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며 마음을 잘 아우르고 품어주는 분이었다.


이분과 있을 때는 아버지가 많이 안정돼 보였다. 옷도 멋지게 잘 입으시고 만약 새엄마가 된다면 이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말하니 성남 엄마는 성인 아들 둘이 있는데 아줌마가 아들 눈치를 보고 재혼은 안 한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성인이 돼서 제일 안부가 궁금했던 분이어서 아버지께 성남 아줌마 어떻게 지내셔 궁금해서 묻기도 했는데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한동안 생각이 많이 났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험담을 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두 번째 엄마는 옷을 참 좋아하는 분이었는지 우리 집 오실 때 단칸방에 옷을 참 많이 싸 오셨다. 이 엄마는 진한 화장품 냄새가 많이 났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새엄마의 옷을 구경하며 갖가지 디자인의 옷들을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어느 날은 새엄마 몰래 곤색 모직 마이를 입고 학교를 갔는데 교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요리조리 보며 뭔가 멋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곤색 마이에도 새엄마의 진한 화장품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새엄마는 옷이 많으니 내가 입고 나간 줄도 몰랐다.


어느 날 새엄마는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갔는데 곤색 마이는 내가 입고 다니는 바람에 가져가지 못했다.  곤색 마이는 영원히 내 차지가 되었다. 새엄마는 가고 곤색 마이만 남았다.


세 번째 아줌마는 내 또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살림을 합치기 전에 우리 넷이 친해지자고 태릉 푸른 동산에 같이 놀러 갔더랬다. 고기도 먹고, 아버지와는 생전 해보지 못한 데이트였다. 아버지가 무척 노력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눈치껏 까다롭게 굴지 않고 서글서글 한 척했다.


어쩌다 그 남자애랑 걷게 되면 내가 누나니까 말을 붙이기는 하는데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데이트였다. 헤어질 때까지 서글서글하게 착한 아이처럼 헤어졌는데 아버지랑 살림을 합칠 것처럼 한참 그러더니 말이 쏙 들어갔다.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별로라고 헤어졌다고 한다.


'다행이다.'  어색한 아이와 같이 지내지  않아도 돼서.


네 번째 아줌마는 신내동 살 때 허름한 우리 집에 들어와 살았다. 아버지는 새엄마들 없을 때 나에게 새엄마들 험담을 많이 했는데 이 엄마 험담을 제일 많이 했다. 게으르다 어쩌고 저쩌고 제일 맘에 안 들어했다. 내가 봐도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어디 있는지 모를 엄마였지만 그래도 불평 없이 잘 지내려 노력했다. 왜냐면 새엄마들이 집을 나가고 나면 아버지가 괜스레 내 탓을 하고 혼낼까 봐 지레 무서웠던 탓도 있었다. 아버지가 괴팍해서 나가는 건데 내 탓을 할까 봐.


어느 날 학교 갔다 와보니 또 새엄마가 없어졌길래 물어보니 이번에는 새엄마가 나간 게 아니고 아버지가 쫓아냈다고 한다.


마지막 새엄마는 아버지랑 제일 오래 살았다. 참 아버지랑 다투기도 많이 하고 나갔다 들어왔다 몇 번 했는데 그래도 아버지랑 제일 오래 살았다. 이 엄마는 결혼한 적이 없고 아버지가 초혼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게 참으로 어리숙하고 순수한 분이었다. 또한 아버지랑 싸울 때는 절대 지지 않고 앙칼졌다.


아버지는 참 마음에 안 들어하고 헤어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막상 헤어지지 않은 것은 아줌마가 갈 데도 없고 아버지가 첫 결혼이라고 불쌍해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주 나중에 내가 결혼하고 둘째를 낳고 아버지가 아프기 직전에 두 분이 파국을 맞고 이혼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 곁에서 꽤 오래 버티셨다.  그래서 내 결혼사진에는 이분의 사진이 있다. 아버지가 아프시기 전에 안 좋게 이혼해서 나와의 인연도 끊겼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식도 안 오시다가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어느 날 연락이 오셨고 반가움에 오갈 데  없으시다고 하셔서  잠시 우리 집에  모신 적이 있다. 그래도 나에게는 엄마 지분이 있는 분이기에 잘 지내려 했는데 나의 모자람 때문에 1년 정도 지내고 헤어졌다.


아무래도 어른을 모실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사람이 정으로 모시려 했다가 서로 너무 힘들어 최대한 좋게 헤어졌다. 나에겐 가장 새엄마다운 분이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가도 삶에 지치고 힘들어 그렇게 인연이 끝이 났다.


백설공주 콩쥐팥쥐 신데렐라 동화책에 나오는 새엄마들은 한결같이 나쁘고 악한데 나는 그래도 새엄마와 같이 사는 동안은 살림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물론 그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그래도 엄마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워주셨네. 이 글을 쓰며 깨닫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이 비워진 상태 결핍된 상태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메워주신걸 이 글을 쓰며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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