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켜도 죽고 돌아와서도 죽는
엄마를 만나러 가출을 하다. 1
충북 *천군 사석리 **
이곳은 우리 외갓집 주소이다. 아니 정확히 이모와 이모부의 주소이다. 이 주소를 나는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해야 했다. 왜냐면 아홉 살에 헤어지고 한 번도 못 본 엄마를 찾으러 갈 거니까.
나의 가출 계획은 철저한 사전 계획이었다. 먼저 정확한 주소도 알아야 했고 그곳에 갈 차비도 있어야 했고, 가는 길도 알아야 하고, 언제 갈지도 정해야 했다.
나는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는 겨울 방학 때 가기로 마음먹었다. 머릿속으로 우리 집에서 외갓집 가는 경로를 수없이 짚으며 복기했다.
'우리 집에서 용산역을 간다. 용산 버스터미널에서 *천 가는 버스를 탄다. *천에서 사석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정류장에서 내린다. 이모부 변** 씨집을 찾는다.'
아버지가 술 취해서 주무실 때, 아버지 수첩에서 외갓집 이모부 집의 주소를 몰래 적어 놓았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만약 이 가출 계획이 들키기라도 하면 아버지에게 죽을 듯 맞을게 뻔하니, 미리 허락받아서 갈 수 없는, 우리 아버지는 불통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말 모든 계획은 철저하고 완벽하고 들키지 말아야 한다.
드디어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된 첫날, 나는 가출을 감행했다. 아버지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엄마 만나러 외갓집 갔다 올게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를 꼭 만나고 싶어서 5학년 때 큰오빠랑 엄마 찾으러 갔다가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언젠가는 나 혼자서라도 오려고 내 기억 속에 일부러 꼭꼭 저장해 두었던, 그때 갔었던 외갓집 가는 길의 기억을 의지하고 수없이 복기를 했다.
이 계획은 아버지에게 들켜도 죽고 가출하고 돌아와서도 죽는 프로젝트였다. 이미 예정된 매 맞음이 될 일이었지만 아버지의 매질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컸기에 나는 그렇게 무모하게 외갓집 주소를 메모한 쪽지를 가지고 그 집이 이사를 갔을지. 만날 수 있다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출을 감행했다.
너무나 불안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여정 길이 될 것이었다. 외갓집을 무사히 찾을지. 그곳에 누가 살고 있을지.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정말 하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여정 길.
떨리는 가슴을 안고 그렇게 집을 나왔다.
마침내 용산역에 도착했다. 용산역에서 나와 조금만 위쪽으로 걸어가면 버스터미널이 왼쪽에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천행 가는 버스를 찾아 생애 처음으로 혼자서 먼 길을 가보는 첫 시작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드디어 *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이제 사석 가는 버스만 갈아타면 된다. 터미널 버스들의 도착지를 확인하며 사석 가는 버스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사석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기사님에게 사석리 **에 내리는 버스인지 물어보고는 내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내릴 곳을 지나치면 큰 낭패이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류장과 바깥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사석리** 도착했다. 몇몇의 사람들이 내리고 나도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말 낯선 동네에 덩그러니 내려서 여기서부터 어떻게 외할머니 집을 찾아서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지 난감했다.
분명히 떠나기 전 수없이 머릿속에 외갓집 가는 길의 복기를 했지만 막상 내려보니 시골 동네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이제 날은 금방 어두워질 거고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 당시 시골은 버스가 금방 끊기고 자주 다니지도 않았다.
자칫하면 한겨울에 낯선 동네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다.
한겨울의 날씨보다 머리가 더 서늘해졌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인적도 없는 비슷비슷한 흙 밭 투성이 시골길이다. 아무도 없다. 지나가는 누구에게 물어보려 해도 정말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생각해 보았다. 시골이니까 마을회관이 있겠지 그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곳에 가서 이모집을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무작정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회관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기억에 의지해 외할머니 집을 찾아내려 한 계획에서 마을회관을 찾아내는 것으로..
나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눈은 사방팔방 살피며 마을회관같이 생긴 곳을 찾았다. 다행히 처음 들어간 골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회관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