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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23. 2024

나는 말하는 것만 언어인 줄 알았다.

눈짓. 몸짓, 숨소리

이것도 비폭력 대화를 배우며 알게 됐다.


언어로 나오는 대화만 신경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화 그리고 상대방에게 표출하는 언어는 눈짓, 몸짓, 숨소리등 다양하다.


난 또 그걸 잘 몰랐다. 그저 말만 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최근에 너무너무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있었다.


가끔가다 큰애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애기 때 기억이 나니?"


그때마다 큰 애는 어린 시절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최근에 큰애 생일 때 차를 타고 옷을 사주러 가던 중이었다. 큰 애가 한마디를 한다.


"나 어릴 때 생각이 났어. 요새 갑자기 기억이 났어."


나는 기대에 차서 물어본다.


"무슨 기억? 뭐가 생각이 났는데?"


"서울 살 때 생각이 났어. 나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슬퍼 보였어. 엄마한테 말을 붙이고 싶은데 못 붙였어. 엄마 얼굴이 슬퍼 보인게 생각이 났어."


너무 놀랐다. 이 얘기를 듣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큰애 네 살 때, 남편이 우리 가정에 쓰나미를 몰아준 적이 있다. 나는 아이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큰 애 등뒤에서, 모르게 울었을 뿐이다. 나는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는 영원히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네 살짜리 아이는 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유도 모르고 엄마가 불행했던 그 순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몸짓이 숨소리가 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  그랬는데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었을까. 겨우 겨우 밥만주고 씻기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를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큰애가 이 얘기를 지금이라도 생각해 내어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나서 큰애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 얘기를 듣고 금방 나락으로 떨어져서 죄책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면 큰애는 그 얘기를 꺼낸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비폭력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다.


속상함이 큰지 잠깐 뇌의 회로가 정지됐다. 그동안 배운 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최대한 배운 기억을 끌어올려 본다.


우선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나는 지금 속상하다. 안타깝다. 나의 마음속의 느낀 감정단어를 떠올렸다.

큰 애의 말에 너무 놀라고 당황했던지(이것도 글을 쓰며 깨달았다.) 잘 떠올려지진 않았다.


그리고 담담한 척 속내를 누르며 한마디를 한다. 


"엄마도 그때 아빠가 많이 속상하게 할 때라 너를 들여다보지 못했어."" (이 얘기는 아쉽다. 전혀 비폭력적이지 않다. 심사숙고해서 나온 말인데 아쉽다.)


큰애가 말한다.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어."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내가 배운 비폭력 공부를 총동원한다.


"맞아. 너무 어렸어. 그때 느낀 니 감정은 어땠어?"

"슬펐어. 엄마가 슬픈 게 느껴졌어. 불행해 보였어. 나는 엄마에게 말을 붙이고 싶은데 못 붙었어.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고 싶은데 말 못 했어."


마치 그때 네 살의 어린 아기가 된 것처럼 말하는 큰 애다. 그저 살아내기만 했던 그 세월에 큰 아이의 시간은 구멍이 나 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생각해 보니 큰 애는 그 당시 나를  전혀 귀찮게 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저 코끼리 나오는 영어 비디오만 주야장천 틀어줬었다. 남편이 가출했을 때니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지금이라도 이 이야기를 네가 떠올려서 다행이야. 너의 마음에 깔린 어두움의 실체의 의문이 풀렸어."


 "엄마의 감정이 다 느껴졌어. 엄마 슬픈 게 느껴졌어."


큰애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때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나 그때 애기인데... 엄마랑 똑같이 슬펐어."


큰애의 울컥함이 느껴진다. 뭔지 모를 미안함이 가슴을 파고든다.(이것도 글을 쓰며 깨달았다.)


'너도 다 알고, 느끼고 있었구나.'

'너도 힘들었구나....'


한참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야. 아빠가 잘못했네."


"그러게 아빠가 잘못했네."


우리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혀 무겁지 않게 마무리는 했다.


오늘의 대화가 얼마나 비폭력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폭력대화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그러면 딸아이는 마음에 두 번 상처가 났을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이랬을지도..


 "야. 엄마가 더 힘들었어. "

"야,  어릴 때 일인데 좀 잊어라."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해, 속상한 방향을 엉뚱하게 큰애에게 돌리려 했을 것이다. 나는 자주 그러니까. 그래야 나의 죄책감을 서둘러 봉합하니까.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의 마음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죄책감이라는 화염에 휩싸이지 않았다. 그리고 큰 애의 마음속 이야기를 수면 위로 꺼낸 것으로 만족했다.


큰애는 네 살까지도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비교적 똑똑한 아이임에도 말문이 트이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그때 내가 어땠지?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엄마였다. 육아의 힘듦과 남편의 속 썩임으로 거의 입을 닫았었다. 그러니 아이도 말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서둘러 어린이집을 보내고, 한 달 안에 말문이 다 트였다. 그때까지 못했던 말이 많았던지 엄청 말을 많이 했었다.


그때 몰랐던걸 이제 의문을 푼다.


큰애와의 소통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어린 시절이 아쉽긴 해도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아이와 나와의 대화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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