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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16. 2024

나는 인지 왜곡이 있다.

상상의 나래는 금물

나는 내가 인지 왜곡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구보다 상황 판단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런 것이다. 무척 촉이 좋은 형사가 있다. 그 형사는 대부분 '감'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 촉이라는 게 실패도 하지만 성공도 많이 한다. 성공률이 높으니 어떤 일이 생기면 일단 촉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촉이라는 것은 사실은 '눈치'다. 눈치껏 이것저것 넘겨짚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매우 발달하고 영리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 무서운 아버지와 살았다. 새엄마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눈치 없는 성격이어도 어쨌든 분석력이 발달했다.


내가 살기 위해 이것저것 분석하고 살았더니 좋은 경우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도 수반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다. 몇 달 동안 연락이 뜸하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뭐 서운하게 한 것이 있나?'


이것이 바로 인지왜곡이라는 것이다. 왜 연락이 뜸한 것을 나에게서 찾는가. 그럴 땐 내가 먼저 전화하고 물어보면 된다. 그걸 못했다. 그걸 못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나간 일을 복기하기도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 근거 없이 오로지 추측 만으로 나 때문이라는 인지 왜곡을 한다. 아무 근거가 없다. 오로지 나의 추측의 결과다.  꼭 나를 죄인을 만드는 추측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중에 그 지인이 가정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서 잠시 사람들과 연락을 잘 안 했다는 것을 듣게 됐다. 그제야 마음 졸였던 생각을 내려놓고,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일이 많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확신에 찬 인지왜곡이 얼마나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는지 알게 됐다.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우리 큰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 간호학과에 한 번에 합격한 걸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대학마다 사회적 배려 대상에 할당된 게 있으니 그렇게 합격했구먼."


아주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웠었아이가 공부 잘했던걸 잘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지인은 그렇게 자기만의 결괏값을 만들어 말했었다.


내가 아무리 어떻게 합격했는지 이야기해도 이 지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번 결괏값이 입력된 것은 내가 아무리 말한다 한들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이것이 자기만의 확신을 만들어 내는 인지왜곡이다.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것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큰애가 고등학생 때 일이다.


나는 네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을 때다. 고등학생  큰 아이 저녁밥을 식탁에 차려내고 불렀다. 식탁에 앉은 큰애가 한마디 한다.


"어. 먹을 게 없네."


나는 이소리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주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화를 냈고 그날 식탁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내가 화난 이유는 이랬다.


'예의가 없다. 힘들게 밥을 차린 엄마의 성의를 무시했다.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 인정받지 못했다.'

(화가 난 이유도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난 뒤 과거를 떠올리며 아주 나중에 찾아낸 것이다.)


아이가 못돼 처먹어 엄마를 무시한다는 잘못된 상상을 하는 나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확신에 차서 돌을 던진다.


"너 엄마 무시해?"


큰애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미 나만의 인지왜곡에 들어가서 그냥 단순히 자기 먹고 싶은 게 없었다는 큰애 말은 들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화목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식탁이었다.


이미 화염에 휩싸인 나는 걷잡을 수 없다.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너는 예의가 없다. 엄마를 무시했다.'


아이의 말이 이쁘지 않았으면 그것만 고쳐주면 된다.


과한 나의 반응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파국을 맞은 그날의 식탁의 분위기...


나는 비폭력 대화를 배웠다. 그럴 땐 어찌해야 할까.

일단 숨을 고른다. 나의 화난 감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질문한다.


"엄마가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지는 않네. 왜 그런 이야기를 했니?"물어보겠다.


큰딸은 여러 번 얘기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없으니 투덜댄 거다. 그냥 투덜거림은 투덜거림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파국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


"야. 그렇게 말하니 엄마 기분이 별로야. 네가 먹고 싶은 걸 말해줘."  이렇게..


서로 다치는 말과 과한 반응이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켰다.


부모에게 언어의 좋은 습성을 유산으로 받아서 저절로 되는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고치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산을 옮기는 것처럼 힘들었다. 배도 아프다.


자신만의 인지 왜곡에 빠져 확신에 차서 상황을 분석하던 때가 있었다.


비폭력 대화를 배웠기 때문에 깨우치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니 글을 쓸 에너지가 생긴다. 인생이 심플하다. 고민이 별로 없다.




* 씹고 뜯고 맛보는 비폭력 대화 tip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생각에 대해 바이런 케이티 (Byron Katie)의 네 가지 질문을 적용.


1. 그(내 생각)이 진실인가요?

2. 그것이 진실인지 당신은 확실하게 알 수 있나요?

3. 그 생각을 믿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4.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당신의 삶은 어떠할까요?)


참고도서 : 선생님을 위한 비폭력 대화  67~70쪽에 위 네가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저자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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