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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Jul 25. 2024

망해가는 회사에 출근하다.

사차원교육주식회사  2

팩스로 공부를 가르치는 회사. 당시에는 꽤 신박한 아이디어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업 아이템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공부하는 시대지만 30년 전에는 이런 교육이 획기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이사, 경리부. 영업부, 선생님부가 있었는데 나는 선생님들이 문제지를 만들면 워드프로세서기(당시 삼보 워드프로세서기)로 시험지를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명문대 나오신 분들이나 학원 선생님 하시다가 오신 분들이 있었다. 참 예쁘게 생기시고 여리여리 했던 목 선생님, 허스키한 목소리의 백 선생님, 키가 엄청 컸던 서울대 출신 조 선생님 등 우리는 회식도 자주 하고 백 선생님 결혼식도 가고 잘 지냈다.  회사는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회원 수도 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잠이 많은 나는 거의 지각하기 직전에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수군 댔고, 일들을 하지 않았다. 나는 왠지 소식을 제일 잘 알 것 같은 경리부 직원에게 물어봤다.


 "무슨 일 있어요?"


 "K 상무가 도망갔데요."


K 상무가 도망갔다고? K 상무라면 선생님부 끝 쪽에 칸막이를 하고 앉은 임원진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몇 번 보기는 했다. 인상이 그렇게 맑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근데 그게 왜?'


나는 K 상무가 도망갔다는 의미를 잘 몰라서 자꾸 물어봤다. 사장님이랑 임원진들이 없어진 것이다. 투자금을 가지고 일부 임원진들이 도망간거다.


나는 그래도 이 일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나한테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몰랐다.  

사무실이 반 토막이 난 것처럼 휑했다.


남은 사람을 살펴봤다. 경리부 몇 명. 영업부 몇 명. 선생님들 그리고 나.  그러면 이렇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가 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침에 근처 문방구 사장님이 뛰어오셨다. 우리는 회사 물품을 문방구에 외상으로 갔다 쓰고 갚지 않은 회사가 된 것이다.  노발대발 화를 내셨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월급도 못 받게 생겼는데 문방구 사장님이 화내는 게 금액이 적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문방구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엄청 화를 내셨다. 다행히 옆에 있던 직원들이 막아서 옹호해 주었지만 그때는 그 사장님의 절박함을 전혀 몰랐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햇병아리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죄송한 마음뿐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계속 월급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회사를 믿고 회원 등록했던 학생과 학부모  모두 모두 많은 피해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 때 그만뒀으면 좋았을 것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했다. 회사가 점점 망해가는데도 계속  근무했다. 뭔가 아쉬웠다. 원상복구 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당장 때려쳤을 것이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월급도 못 받고 일하는 것은 참 많이 힘든 일이다. 왜 우리는 월급도 안 나오는 그 회사를 쉽사리 그만두지 못했을까.


첫번째는 받지 못한 월급을 언젠가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워낙 사업 아이템이 좋았고 회원은 다달이 회비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돈 얼마도 돌아오지 않았다.


두 번째는 동병상련이랄까 전우애라고 할까 어려운 상황에 서로를 의지하며 남은 사람들끼리 의지를 불태웠었다.


우리는 얼마 후에 사무실을 관세청 근처의 월세가 싼 곳으로 옮겼다. 어떤 사람은 월급 대신 컴퓨터라도 들고 갈까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우리는 그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했다. 회사를 믿고 계약한 학부형과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고 채점을 했다.


그렇지만 한 달 한 달 지날 때마다 회원 수는 줄어들었고 선생님도 한두 명씩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붙잡지도, 뭐라고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달만 월급이 없어도 힘든데 몇 달이나 월급이 안 들어오니 서서히 애사심은 사라지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6개월이 지나고 아무런 미련 없이 나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황금 같은 이십 대의 초반이 날아갔다.


돈 욕심이 많은 어떤 사람들이, 책임감 없는 어떤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책임감을 다하려 했을까. 생각해 보면 꼭 월급을 받기 위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세상은 우릴 속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좀더 일찍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회사를 살려 보겠다고 선생님들과 몇몇 직원들과 우리는 무급의 생활을 한 것이다. 언젠가 회사가 잘 되면 우리의 밀린 월급을 한꺼번에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거의 반년을 고생하다가 카드 빚만 잔뜩 안고 그렇게 세월만 버리고... 사차원 교육 주식회사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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