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무역회사에서 일을 배우다.
드라마 '미생'이 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집에서 미련 없이 나왔다. 매일매일 폭력적이고 시한폭탄 같은 아버지를 견디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아버지의 폭력을 악착같이 견뎠다.
불안하고 무서운 아버지였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집을 나오면 어쩌면 집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만 기다렸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 아버지한테 오빠 집으로 가있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미련 없이 나왔다. 어차피 아버지와는 아무 대화도 안되고 죽도록 맞을게 뻔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일을 나가셨을 때 편지를 남겨두고 미련 없이 후련하게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와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앙갚음의 행위였던 거 같다. 다행히 작은오빠의 자취방으로 갔지만 여기도 그리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다. 오빠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닮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얼른 돈을 벌어 독립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백수가 되면 꼼짝없이 굶어 죽는다.
나는 사차원 교육 주식회사를 월급도 못 받고 다니다가 카드빛만 잔뜩 지고 그만두었다. 빚만 잔뜩 지고 얻은 게 없었다. 딱 하나, 타자 실력은 늘었다.
학교 다닐 때 따 두었던 무역영어 자격증과 워드 자격증뿐이 없으니 그나마 도전할 곳은 무역회사이다.
친구의 추천으로 용산에 있는 무역협회에 구직등록을 해두었다. 일주일 후 여러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와서 면접을 보러 다니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이십 대의 풋풋함이 전혀 없는 말도 안 되는 얼굴이었다. 커트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 안 좋은 성적까지.. 면접 본 회사에서 전화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다 한 회사에 면접을 가게 된다. 경복궁역에서 효자동 쪽으로 오른쪽 쭉 걸어가다 보면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2층에 자장면 집이 있고 3층에 사무실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나는 첫 회사를 건물만 보고 실망해서 조금밖에 안 다녔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건물 외형만 보지 말고 어떤 회사인지 잘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가 졸업한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셔서 성실하고 똑똑하게 보시고 합격하였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내가 이런 오래된 자장면집 건물에서 일한다는 게 마뜩지 않았지만 직전 회사에서 월급을 오랫동안 못 받아 경제 상황이 엉망이었다. 한 푼이 급하다 보니 다녀보기로 하였다. 건물이 조금 오래되긴 했어도 월급을 안 주고 그런 회사는 아닌 거 같았다. 무엇보다 무역일에 초보인 나를 써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첫 출근을 하였다.
내가 다니게 된 회사는 무역을 하는 회사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객들의 물건을 다른 나라로 비행기나 배에 실어서 오고 갈 수 있도록 대행해 주는 회사이다. 수입도 하고 수출도 하는 회사이다. 물건을 수입 수출할 때 돈도 오가야 하고 온갖 통관 서류들과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일을 대행해 주고 수수료를 남기는 회사이다. 고객층은 보따리 장사, 회사 등 다양하다.
사장님은 사십 대 이고 처음부터 이 일을 배우셔서 자수성가하셨고 회사는 꽤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고 성장하고 있었다. 수색에 회사 창고도 가지고 있고 사무실이 작고 허름하지만 내실 있는 회사였다.
나는 당시 차 대리님에게 하나하나 일을 배웠다. 선적 회사에 컨택해서 운송료 비교 견적하고 패킹 리스트, 인보이스 작성하고 고객에게 최종 금액 견적서 내는 법까지 수출입의 모든 일을 배웠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더욱 여러 분야를 배울 수 있었다.
차 대리님은 삼십 대의 여자분이셨는데 엄청 유능하셨다. 내 눈에는 만능 캐릭터였다. 수출입 일이 까다로운 일이 많아서 문제가 생길 때가 많았는데 차 대리님은 일을 척척 잘도 해결했다. 고객과도 잘 지내고 회사 안에서도 차 대리님의 영향력과 리더십이 대단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회사의 모든 일은 차 대리님이 다 해내고 있었다. 여자분이 저렇게 유능하게 일을 해낸다는 게 존경심이 들었다. 차 대리님의 전화통은 쉴 새 없이 항상 불이 났다.
사장님은 그냥 왔다 갔다 하고 영업하고 골프 치는데 차 대리님은 정말 회사에 충성했다. 이 회사는 차 대리님 때문에 잘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사장님도 차 대리님을 존중하고 믿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차 대리님은 사장님의 남동생의 부인, 즉 제수씨였다.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 대리님은 여러모로 인간미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당시 경리부에 있던 미쓰리 언니가 말도 없고 꽤 깍쟁이였는데도 이뻐했다. 나는 미쓰리 언니가 얄미울 때가 많았는데 차 대리님은 누구나 아우르고 이뻐했다.
나는 차 대리님이 가르쳐 주는 데로 차근차근 일을 배웠고 차 대리님처럼 유능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배웠다. 당시에는 통관 서류들을 들고 직접 세관에 왔다 갔다 해야 했고 해운회사로도 많이 다녔다.
사장님은 처음에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었는데 항상 차 대리님이 나를 좋게 이야기해 줘서 수습 기간을 지나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었다.
나도 점점 실력이 늘어 꽤 까다로운 통관절차도 잘 해내게 되었고, 공장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수색에 있는 공장에 서류 전달해 주러 갈 때도 쭈뼛쭈뼛했는데 점점 넉살이 좋아졌다.
나는 좋은 어른을 보지 못했는데 차 대리님처럼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유능하고 사람을 아우르고 누구나 찾게 되는 그런 사람.
드리마 '미생'을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주인공의 마음과 회사의 모습을 잘 이해하고 몰입해서 본 것은 그때의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차 대리님은 나중에 차 과장님이 되고 차 사장님이 되었다. 나중에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고도 꽤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했다. 차 사장님이 되어 자기 회사를 차렸을 때 그 회사에 들어가 일 년 정도 일을 하기도 하였다.
어찌어찌 내 삶을 살다가 인연은 끊겼지만 지금까지도 생각난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계실까 궁금하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