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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Jul 29. 2024

딱 5분, 커피숍 뒷문으로 도망치다.

다단계에서 오빠를 구하다. 1

우리 작은오빠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게 된다. 우리 오빠는 나보다 네 살 많다. 오빠도 나와 같은 부모와 자랐으니 항상 결핍되고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반항기가 많아서 아버지와 많이 부딪혔고 나와도 참 많이 치고받고 싸웠다. 정말 이런 웬수가 없을 정도로 나랑 많이 싸웠다.


큰오빠는 그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나를 이뻐하는 게 있었지만 작은오빠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땐 참 미워했는데 나와 같은 가정환경에서 오빠도 똑같이 엄마가 없어서 인격형성이 제대로 안된 거니 참 불쌍한 사람이다.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안 보내서 사회인으로 정착을 잘 못했다.


 공장에서 열심히 근무해서 모은 돈을 같은 방 사람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어 홀랑 털어갔다. 당시 500만 원(35년 전이다)이라는 큰돈이었다.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돈을 공장 룸메이트가 오빠 통장을 훔쳐서 가지고 도망간 것이다. 얼마나 원통하고 속상하고 오빠가 답답하고 불쌍했다. 그렇게 오빠는 어리숙하고 사회생활을 잘 못했다.


 항상 큰오빠가 작은오빠 사람 구실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었지만 고마운 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작은오빠가 새언니(여자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하는 거다. 우리 오빠는 모태솔로로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데 새언니를 소개해 준다니 신기하고 기대가 됐다.  강남 쪽 어디 커피숍에서 오빠와 어떤 여자분이랑 만났다. 오빠는 평소와 다르게 양복을 입었다. 나는 오빠랑 만단 다길래 조금 못생기거나 부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멀쩡한 거다.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애인 사이 같지가 않고 좀 꺼림칙했다. 오빠와 언니는 자기들이 같이 일을하고 있는데 가보자고 한다. 오빠가 양복 입고 일을 하는 곳이 있다고?  궁금하기도 해서 같이 택시를 타고 삼성역 어딘가에 내렸다.


우리는 어느 골목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렸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무실 앞에 떼거지로 서있고 우리를 주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와 여자분이 안내하는 데로 사무실로 들어가 제일 윗사람인 것 같은 사람이 우리를 맞이하더니 갑자기 사업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어쩌고 저쩌고.... 알고 보니 그 작은오빠와 같이 온 언니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고 나를 데려오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뭔가 위압적인 분위기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모두가 우리를 주시하지만, 보지 않는 척하는 사람들. 싸늘한 느낌이 다단계구나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위기를 어떡해서든 모면할 궁리를 했다. 그런데 나만 빠져나갈 것이 아니라 오빠도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여태 힘든 부모 만나서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다단계에 빠지면 큰일이다 싶었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사람이 위기 상황에 닥치면 의외로 침착해진다. 나는  내가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사업설명회를 열심히 듣는 척을 했다. 관심 있는 척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오빠랑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러는데 같이 나가서 잠시 이야기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순간 그 언니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멈칫하고 막아서는 모양새였다.


나는 생각했다. 리숙한 작은오빠가 다단계에 빠졌다. 그동안 오빠는 열심히 모은 돈을 룸메이트가 훔쳐 가서 한차례 좌절을 했었고 그래도 사회에서 살아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좌절했었다. 이제 다단계에 빠지면 작은오빠는 어떻게 살까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나는 이곳 다단계 사무실을 어떡해서든 탈출해야 한다. 꼭 오빠를 데리고.


나는 아주 호의적인 태도로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아주 여유 있고 미소 띤 얼굴로 오빠와 오랜만에 만나서 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들은 믿지 않는 표정이었고 내보내지 않으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관문만 통과하면 오빠를 구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여유롭고 편안한 얼굴로 이 건물 지하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야기할 거고(들어오면서 커피숍 있는 걸 봐뒀었다) 딱 5분만 이야기할 거라고 안심시켰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딱 5분만 이야기하고 오라고 허락(?)을 받았다.


나는 오빠와 지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양복 입은 사람들은 커피숍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5분이다.


오빠는 영문도 모르고 그저 나를 따라서 커피숍으로 들어온다. 나는 커피숍으로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은 주인에게 뒷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주인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간략하게 우리가 지금 나쁜 사람에게 쫓겨서 도망가야 할 사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주인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뒷문을 알려주었다. 뒷문은 카운터 뒤쪽 주방 옆에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5분이다.


오빠는 정말로 내가 오빠랑 커피숍에서 뭔가 이야기할 게 있어서 온 줄 아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다. 오빠를 설득해야 한다. 나는 오빠에게 아주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나갈 거고 오빠는 나를 따라와야 해. 뒷문은 내가 알아뒀어."


오빠는 흔들리는 눈빛이었고 따라 나가지 않으려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지금 오빠는 나를 믿어야 하고 저 사람들을 믿으면 안 돼. 우리는 여기를 나갈 거야."라고 말한 후 오빠 손을 강하게 잡고 뒷문 있는 쪽으로 뛰었다. (오빠는 남자치고 덩치가 좀 작은 사람이다.) 나의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에, 오빠는 내가 이끄는데로 따라왔다.


우리가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우리가 아까 들어온 문에서 여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 여자는 무언가 말을 하고 말리려고 했지만 나는 오빠 손을 꽉 잡고 뒷문으로 뛰었다. 그때부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뒷문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는 학생 때 잠깐이지만 넓이뛰기 육상 선수를 했었다(넓이뛰기는 순간 민첩성이 중요하다). 지금은 기억이 오래됐지만  아마 내 운동신경으로 엄청 빨랐을 거다. 뒷문 계단을 빠져나오자마자 대로변으로 뛰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황급히 잡고 오빠를 밀어 넣다시피 태웠다.


"강* 경찰서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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