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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Jul 21. 2024

고양이 양육관 격돌

이름은 칠월이

그야말로 '격돌'이다. 얼마나 거센지 충돌이 아니라 격돌이다.


어제 우리 셋째와 고양이 '외출'을 두고 의견충돌이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다.', 셋째는 '고양이를 데리고 외출할 수 없다.'가 다툼의 주제였다.


다툼이라고 한 것은 우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화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트에 차를 타고 가면서도, 청소용구를 고르면서도, 계산대에서 줄을 서면서도, 계산을 하면서도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듯이 끊임없이 갑론을박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말이 안 통해. 고양이는 외출하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너는 뭐 그렇게 폐쇄적으로 키우냐. 평생 집에서 한 번도 안 나오면 얼마나 불쌍하냐."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야. 특성이 그래."


"아니 그럼 고양이는 평생 친구도 없고 그게 뭐야."


"아니. 사람하고 다르다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데리고 다녀. 엄마는 고양이 사회성 키워줄 거야."


"누가. 누가 그런데 이름 대봐."


우리는 유치 찬란하게 서로 가진 논리를 다 펼쳐 놓았다. 누가 의견을 굽힐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 이런다.


우리는 *마트에서 나와서 의정부 영풍문고에 가는 20분의 시간에도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했다.


결국에는 너무 지쳐서 내가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니 고양이니까 외출 안 하면 되잖아."


그러면 끝날 줄 알았다. 셋째는 그럼 왜 지금까지 우겼냐고 사과를 하란다.


하. 고양이 데리고 와서 사이가 좋아질 줄 알았는데  로망이었나 보다.


'두고 봐라 나중에 너 아기 낳으면 절대 안 봐줄 거다.'


영풍문고에 도착해서 셋째를 먼저 내려주고, 나는 주차를 하기 위해 자리를 찾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앉아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는 화가 났다. 화난 마음을 추스르면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셋째가 고양이에 대한 책임감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에 대한 말하는 태도가 기분이 나쁜 것이다.


그냥 엄마에 대한 권위, 존중 이런 게 뭉개진 기분이었다.


차에서 나와 영풍문고로 내려갔다. 방학 때 공부하겠다고 문제집을 고르는 셋째다. 나는 그냥 좀비, AI처럼 서있었다.


"엄마, 두 개 중에 어떤 게 괜찮아?'


수학문제지 두 권을 내보이며 골라달란다. 나는 수학이 싫다. 수학은 젬병이다. 나는 대충 휘리릭 넘기며


"이거" 했다.


셋째는 다른 과목문제지도 신중히 두 손 가득 문제지를 골랐다. 가격이 꽤 나왔다.


"엄마. 내가 아깐 심했어." 한다.

"나도 심했어." 마음은 안 풀렸는데 그냥 말했다. 나는 뒤끝이 길다. 애들이 서운하게 하면 그게 오래간다. 못난 엄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 침묵했다. 그렇게 난리를 쳤었는데...


올 때는 비가 안 왔는데 갑자기 거센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마침 이승철의 '서쪽하늘'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감성적이 되어서는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가뜩이나 창문이 빗줄기로 잘 안 보이는데 눈물을 흘리니 더 흐려진다.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없애고 운전에 집중한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이렇게 의견이 충돌한 적이 많다. 특히 사춘기에 많이 그랬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커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아직 잘 적응이 안 된다


쿨하지 못한 엄마다.


* 고양이 외출은 안하기로 결정했답니다. 많이 부족한 엄마였지요. 엄마가 완전히 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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