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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물 May 12. 2024

억지의 파뿌리차

씁쓸한 맛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습니까?" 많은 한국 결혼식은 이런 선서를 하고 “딴딴 따다 딴 딴 따다” 신혼부부가 되어 웨딩 마치를 하고 걸어 나온다. 근데, 파뿌리가 된다는 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작은 쪽파 아니면 대파의 뿌리만큼의 흰머리가 생기면 이혼해도 된단 말인가? 염색하는 사람들은 어쩌잔 말인가?

아빠는 새까만 머리에 20대 초반부터 흰머리가 나셨다고 한다. 결혼식 들어가기도 전에 파뿌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게 쪽파만큼 인지 대파만큼 인지는 내가 그때 세상에 아직  없어서 해명할 수 없다. 아빠의 흰머리 때문에 설마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었을까? 그건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선  대답하기 힘들다. 부모님이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은 건 장담한다. 아무려 나에게 아빠와 좋은 추억들이 있어도, 아빠는 때론, 아니 자주 좋은 아빠도 남편이 아니었다. 부모님 관계에선 누구한테 문제가 있었는지 손가락질하기 힘들다. 내 결혼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나는 아빠의 흰머리 덕분에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가 다섯 살 때부터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흰머리 뽑는 알바를 시키셨다. 그때만 해도 흰머리 하나 뽑으면 그 자리에서 두 개 난다는 말은 못 들었던 것 같다. 누가 다섯 살짜리에게 그런 말을 할까. 들었다면 아빠가 듣고 오셔서 염색을 바로 하시고 흰머리 뽑는 일은 없으셔야 했었다. 흰머리 뽑는 알바는 다섯 살짜리에게 꿀 알바였다. 흰머리 하나당 50원이었으니. 흰머리 네다섯 개만 찾아도 새콤달콤이나 미니쉘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가끔은 검은 머리도 잘못 뽑아 그냥 흰머리 뽑고 잃어버렸다고 우기기도 했다. 동생이랑 아빠 머리를 쥐어뜯어 가면서 누가 먼저 흰머리 찾나 보물찾기 시합도 하며 시간 보내기 좋은 활동이었다. 일부러 동생이 낮잠 자고 있을 때 아빠의 머리 위를 어정거릴 때가 많았다. 안 그러면 사탕 사러 가기 몇 주 더 기다리던지, 동생이랑 용돈을 합쳐서 동생이 원하는 새콤달콤 맛을 사야 됐으니까. 사탕 때문에 참 쉬운 용돈벌이였다.

반면으로 엄마는 갈색빛 머리에 50 초반까지 흰머리 하나 안 나셨다. 엄마 머리만 보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아낌과 사랑이 충만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도 엄마 머리 색깔과 비슷해서 나도 흰머리 50대까지 안 나겠지,  하고 다행이라 하며 컸다. 그건 나만의 큰 상상이었다. 2019년도 결혼 준비하며 새싹이 흙에서 뿅 튀어나오듯 첫 흰머리를 보게 되어 충격받았다. 역시 아빠에 피는 못 속이는구나. 하나로만으로 멈출 줄 알았지만 결혼 준비는 지금까지 내 인생 가장 큰 스트레스받은 일 3위 안에 들어가서인지 2개 더 나왔다. 부모님의 모 아니면 도인 흰머리를 봐선 머리색만 봐선 결혼생활에 대한 답변이 안 나오게 되겠구나.

여기서 멈추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10대서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 좀 낮추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다. 결혼식 후 나이 하나씩 먹으면서 스트레스는 더 쌓이며 흰머리 한 줄기씩 얻고 있다. 정말 일 년에 한 가닥씩만 식만 늘고 있어 엄청 애매하다. 10가닥 안 되는 흰머리를 염색하기엔 염색약이 너무 아깝다. 뽑으면 안 된다는 건  이젠 알았으니, 당연히 안 뽑고 있다. 그래도 흰머리가 보이면 너무 너무나 거슬리는 걸 모기 물리고 긁어야 하는 것 같이 뽑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줄까?

할 수 없이 나도 알바를 고용했다. 그것도 고스펙 알바, 내 동생. 무려 자칭 26년 흰머리 전문 알바다. 세월도 흐르고 물가는 얼마나 올라갔을까? 흰머리 하나에 100원은 어림도 없다. 자매 찬스도 없다. 언니만큼 되는데  2024년도에 무료가 뭐냐고 너무나 뻔뻔하게 1불 달라고 한다. 이젠 뽑는 게 아니라 흰머리를 잡고 뿌리에 제일 가깝게 눈썹 가위로 잘라야 하는 높은 기술이 필요한 시술이다. 뽑게 해 주면 한국 100원, 원가 쳐주겠는데 언니는 탈모니까 의료법으로 자기 고소당한다고 안된다며 나를 두 번 죽인다. 일괄 거래로 5불에 모든 흰머리를 해결해 준다고 한다. 며칠 전 가르마를 뒤치잔 했을 때는 5개는 넘어 보였으니 밑지는 장사인 것 같아 제시 조건대로 거래했다.

그녀는 재빠르게 3개의 흰머리를 잘라냈다. 내 소중한 검은 머리도 잘라냈다. 더 이상 안 보인다고 30초 안에 5불이 소멸해 버렸다. 나는 분명 더 있을 터라고 숨죽여 말했다. 동생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자존심이 상해 체크도 안 했다. 정 안되면 AS 해달라고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라 귀차니즘 심한 지금 싸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그녀의 흰머리 커트 서비스가 필요한 “을”이니까.

다행히 나에겐 남편이란 다른 아르바이트가 있다. 남편은 아무 경력에 검은 머리도 자주 자르는 애매한 무급 알바다. 거기다 눈썹 가위에 자기 손가락을 찌르기도 하고 내 두피도 공격하기도 해서 마음만 같아선 자르고 싶은 알바다. 거기다가 흰머리 그냥 기르지 않는 왜 자르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흰머리 참 귀찮은데 이 짓을 평생 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아빠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에게 흰머리 알바를 시켰을지 궁금하다.

내 머리 파뿌리 때문에 고생을 하니, 나를 괴롭혔던 또 다른 파뿌리가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 때 잔병치레를 유난히 많이 치렀던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었다. 엄마는 약 많이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셔서 민간요법으로 내 기침을 다스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도전해 보셨다. 꿀이랑 생강과 대추를 넣어 배숙도 만드셨고 모과차, 도라지차 안 마셔본 차가 없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파뿌리차다. 어묵탕 끓여 먹어야 할 것 같은 애매하게 달짝지근한 국물을 “차“라고 부르는 건 범죄다. 아이한테 이런 차를 기침에 좋다고 마시라고 하면 어떤 다섯 살 아이가 아이도 감사하다 하고 마실까? 건강에 좋아질 차보다는 마녀의 물약에 더 가까웠다. 아빠는 애가 이렇게 싫어하는데 그냥 병원 데리고 가서 약 받아 먹이라고 엄마에게 타이르시면서 나에게 파뿌리차 마시면 아이스크림 사주신다고 꼬셨다. 아무리 그 전날, 몇 시간, 아니 몇 분 전 싸웠어도 그들은 부부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에 약하니까 또 한 번 속아드렸다. 난 아빠한테도 약하니까.

아빠랑 주말에 영상 통화를 했다. 아빠가 요번에 염색 잘 된 것 같지 않냐고 자랑을 하셨다. 할머니가 친구분께서 좋은 염색약을 받아 오셨는데 알고 보니 미용실에서만 쓰는 염색약이라 이렇게 좋은 거였다고. 머리가 덜 비어 보인다고 만족하신다며 콧노래를 흥흥거리시는 걸 보며 이게 내 미래인가 걱정이 되다.

궁금하다. 결혼의 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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