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hayn May 09. 2022

설치로부터 구분되는 설치

한국의 설치미술 계보를 통해 본설치미술의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과 공간


모든 미술은 작품이 되기 위해 전시된다. 전시된 작품이 누군가에 의해 응시될 때 비로소 미술은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전시를 위해서는 사소하게 작은 오브제부터 대지를 가둑 메우는 대규모의 작품까지 ‘설치’를 필요로 한다. 이때의 설치는 목적을 위한 수단과 행위로 설명되며 ‘설치 미술'은 동사 설치하다의 설치로부터 구분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설치 미술Installation Art’이 다른 모든 ‘설치Installation’로 부터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무엇을 ‘설치 미술’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설치의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과 공간에 대해 한국 설치미술의 계보에서 일어난 획기적 사건들을 통 살펴보고자 한다.



아이러니의 순간

18세기 이후 합리적 사고와 객관성을 내세운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이성중심주의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이념, 종교, 인종 간 대립을 구실로 한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그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받았다. 모더니즘 이후 미술은 유례없이 다양한 양식들과 실험적인 모색들이 공존하는 다多정체성을 드러내며 개별 존재를 인정했다. 예술가들은 재현해온 세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재현된 세계뿐만 아니라 작가의 흔적마저 지워나가며 ‘순수한 익명성’을 추구한다. 익명성을 획득한 예술은 예술가가 참조한 세계의 흔적, 재현된 세계이기를 그치고 세계와의 구분 그 외부에 위치되며 ‘탈脫정체성’을 획득한다. 역설적으로 정체성을 지움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수용할 수 있게 되며 모더니즘의 논리적 전개는 종말을 맞이한다. 설치미술은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가역적 분기점에 위치한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복잡하게 변해가던 20세기 초의 혼란한 상황은 문화영역까지 요동치게 했고, 예술가들은 기존 문화와 비교되는 새로움을 추구했다. 그들은 이전의 개념과 가치를 넘어 새로운 방법론을 확장해나갔다. 마르셀 뒤샹이 전시장에 남성 소변기를 설치한, 일면 단순해 보이는 그의 행위는  “레디-메이드의 등장 이후, 무로부터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성을 요구하는 것은 나이브 한 태도.”로 여겨질 정도로 현대미술의 개념을 창조한 마일스톤으로 기록된다. 이제 ‘예술가가 제작하는 것이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작품의 제작making art과 전시displaying art사이의 구분은 모호해졌는데 뒤샹에게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곧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물은 새롭게 인식될 수 있었고 현대 미술에 오브제object가 모더니즘 제도에 대한 도전으로 등장하게 된다. 오브제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설치installation는 그 자신과 함께 공간에 적극적으로 작용하며 공간을 창조한다. 조각은 공간을 새롭게 규정하고 그것을 구조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브제의 그것과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설치미술 계보의 획기적 사건들

전 지구적 대립의 종식과 세계화 흐름 속 한국 사회도 변화를 모색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1980년대에서 1990에 이르며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이전의 가치와 개념은 허물어졌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지식 체계가 수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역사는 ‘새로움'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기에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방위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미술비평가 이영욱은 「80년대 미술 운동/반성과 계승」(1994)에서 문화 변동기를 맞이한 당대 미술가들에게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며, ‘새로운 매체’에 대한 필요성과 개인의 ‘자기 창조’에 대한 확신을 강조했다.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 내지 그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최근에 들어 적지않이 인식이 높아진 듯하다. 실상 미술의 민주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진보적인 미술 운동에 있어 매체나 형식에 있어서의 새로움의 수용과 실험, 그리고 그와 연관된 새로운 유통 양식의 개발이 그 어느 곳보다도 적극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변혁기의 거대한 물결 아래 작가들은 개인의 창조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새 시대에 대응했다.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시대순으로 톺아보며 한국 근현대기의 설치미술이 발생하는 지점을 알아본다.


설치미술의 시작을 조각에서 보았던 시각에서 ‘설치는 현재 가장 널리 자리 잡아가고 있는 조각의 한 영역’으로 범주화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 공진회 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에서 14점의 작품이 ‘조각'으로 분류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안확(安廓, 1886-1946)이 미술을 회화, 조각, 공예 등으로 분류하면서 ‘조각'을 정신적인 감상의 대상으로 정의했던 분류체계가 가시화된 것으로, 불상을 종교나 제의적 형태에서 분리해 미술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조각은 광복 이후 새로운 양식과 재료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변화한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한 장기은의 <사색>은 덩어리의 중간 부분을 뚫어 ‘공간'을 조형 요소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1950년 후반 용접 기법이 조각에 활용되면서 김종영의 <전설>그림2처럼 다양한 철 오브제를 이어붙인 형태의 조각이 등장하게 되고, 이 방법은 ‘하나의 덩어리’로부터 조각을 해방시켜 주었다. 


장기은, <사색>, 1953, 석고 / 김종영, <전설>, 1959, 철


1960년대 들어 여전히 설치미술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미술세계》는 1987년 의 글에서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이승택, 조성목의 《원형조각회》(1963)을 공식적인 첫 설치 전시로 기록하고 원형조각회의 윤리강령을 그 근거로 들었다.

<원형조각회윤령>
- 우리는 새로운 조형 행동에서 전이 조각의 새 지층을 형성한다.
- 일체의 타협적 형식을 부정하고 전이적 행동의 조형의식을 가진다.
- 공간과 재질의 새 질서를 추구하여 새로운 조형 윤리를 형성한다.


이승택, 1964 / 조성묵, 1964



《무동인전》(1967)과 《청년작가연립전》(1967)에서는 오브제가 도입되고 좌대 없이 전시장에 설치되었다. 이를 한국 설치미술의 시원으로 거론하기도 하는데 당시엔 “실험미술"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산업 발달과 함께 스테인리스스틸, PVC, 아크릴 같은 공업 소재와 이에 따른 새로운 제작 기법이 도입되면서 한인성의 <비전>과 같은 작품이 제작되기도 했다.


한인성, <비전>, 1972, PVC /  이승택, <바람>, 1972, 나무·천



이승택은 60년대부터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과 재료로 소신 있는 실험을 이어갔다. 자신의 작업을 ‘비조각'이라 칭한 그는 기존의 조각 개념을 부정하기 위해 물, 불, 바람과 같은 비물질적 재료들을 실험하며 한국 현대미술 계보에 마일스톤을 세운다그림6. 보리스 그로이스는 이승택을 혁신적 예술가라 부를 것이다.  


“혁신적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문화의 콘텍스트에서는 늘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상처 입히는 태도를 취한다. 혁신적 예술가는 그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그 문화와는 다르고, 낯선, 대안적 정체성을 구축한다. 낯선 문화의 콘텍스트에 자리 잡았을 때 혁신적 예술가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자신의 새로운 문화적 환경과의 대비 속에서 긍정적으로 가치 절상 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문화예술이라 인정받은 아카이브는 파괴되기 마련이고, 그다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아카이브를 재구축한다. 이승택 이후 조각은 기존 조각 개념에 저항하며 무한한 확장을 이루게 되고 그 무렵 일어난 전위적 실험들은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 현대미술을 전개했다. 


김달진은 AG그룹의 제1회 《아방가르드전》(1970)을 20년 설치미술사의 시원으로 보았다. 당시 작품들은 이전의 방식을 포기한 채 바닥에 놓였고, 여전히 ‘실험’의 한 형태로 분류되었다. AG그룹뿐만 아니라 ST, 제4집단 또한 전통적인 미술에 질문을 던지며 혁신적으로 활동했다. 제8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할 작가를 선정하기 위해 열린 제1회 《앙데팡당전》(1972)에서는 ‘회화'와 ‘조각'이외에 ‘입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곧 회화나 조각으로 분류될 수 없는, 기존 장르 바깥에 위치한 예술이 문화적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제1회 《앙데팡당전》전시 광경, 1972


이후 ‘설치 미술’이라 명명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들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로 대중의 흥미를 끌기도 했다. 신학철은 <10:1>작업에서 실제 의복으로 한 벽면을 모두 덮어버리는 대형 작품을 선보인다. 송번수나 이승택 등의 작가도 20m 이상의 벽면을 사용해 공간을 점유한 작업들을 보이는데 ‘이는 작가들이 공간의 안과 밖의 문제를 이미 고민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설치미술이론뿐 아니라 장소 특정적 아트의 성격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연을 전시장으로 삼은 야외 설치작품들도 등장했다.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청년작가회가 벌이는 일련의 야외 작업은 인간과 물 질, 인간과 자연, 인간과 환경, 인간과 원소, 또한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육체와 인식, 행위와 흔적의 발표와 수용”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의 작품이 단순히 야외를 무대로 삼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지적했다. 컴퓨터 기술과 대중매체의 발달에 따라 전자 예술, 전위음악이 역동적으로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작가들은 텔레비전 등의 새로운 재료와 형식을 기꺼이 다루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신학철 <10:1>, 1971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던 설치 미술은 1980년대에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전위적인 미술의 정신 그 자체였던 설치 미술은 이제 숭고한 뜻보다 개인적 필요에 의해 사용됐고, 목과 수단이 분리되었다. 하나의 장르로서 영역을 굳히고 교과서적 이해가 가능해졌다. 대중은 더 이상 충격을 느끼지 않게 되고 설치미술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이 되었다. 설치 미술은 계속되지만 이전의 것과는 다른 설치미술이 된 것이다. 장르화가 돼버린 설치 미술은 앞선 이들이 저항했던 형식 미학의 굴레로 다시금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설치미술을 받아들이는 작가와 관객, 그리고 상황이 변했고 순차적으로 다가올 새로운 미술을 기다리는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을 뿐이다. 


설치미술은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는 국제화 흐름 속 신진 작가들에 의해 급격한 확장을 이룬다. 설치미술로의 이행기에 이불, 안규철, 박이소, 양혜규, 정서영 등의 작업에서 여전히 조각적 특성들이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들은 설치 미술을 단순한 장르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비평적 자세로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작업을 전개함으로써 전통 미술의 관습적인 문법과 전략을 해체하고 재정립하여 이전과는 다른 새로움을 만들었다. 


설치미술은 종이 위에 드로잉이나 캔버스 위의 오일 처럼 하나의 장르, 양식이 되었다. 홍명섭은 설치 개념이 현대 미술의 기법적 모드로 전개되어 형식주의적 테마로 발전하였음을 지적하며 설치미술의 방법적 유형을 정리해 하나의 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 설치미술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설치’로부터 분리된다. 하나의 판에서 조각으로 오려져 튀어나온 설치미술은 스스로의 판을 꾸린다. 다양한 주제와 방법을 이용하며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 



홍명섭 (1987). [기획특집설치미술2] 현대미술에서의 설치개념의 유형에 관하여. 미술세계, 39-50.


새로운 공간

모든 미술이 그렇듯, 설치미술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탐험을 떠난다. 전시장에서 외부로, 공공 공간으로 때로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설치미술은 이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로 흥미로운 시선을 보낸다. 메타버스는  진짜Virtual이면서도 허구Virtual의 것이다. 혹자는 ‘가상’세계이기에 형이상학적으로 ‘없다’라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도 하지만 있으면서도 없는 아이러니의 지점에 메타버스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미 ‘세계universe’로서 명명되었고 다양한 목적에 의해 적극적으로 경험되고 있다. 또한 가상공간의 특정 부분(땅, 즉 가상의 부동산)은 가치에 따라 지불되고 점유되며 그곳으로부터 연속적인 관계가 발생하고 있다. 


NFT(Non Fungible Token)는 그 세계에서 단연 존재감을 드러낸다. NFT는 일종의 디지털 아트로 통용되는데, 이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권리증(權利證)으로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하다. 작가는 디지털 작품과 소유권을 NFT로 판매하고 딜러는 암호화폐로 구매할 수 있다. 이 토큰은 구매자에게 소장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한다. NFT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이를 두고 거품이라―가상을 가상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누구든지 토큰화할 수 있는, 즉 가상 화폐를 주조鑄造minting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다. NFT의 지향점은 현재까지 꽤나 명확해 보인다. NFT는 탈 중앙화된 세계에서 개인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자본주의의 최대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 광기가 서려있는 이 공간, 아니 고쳐 말해 자본주의 시장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가치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욕망과 광기가 투영된 NFT와 가상세계는 현실을 더욱 투명하게 보여준다. 가상세계를 유영하는 이들은 현실 세계에 더욱 공고히 발을 딛고 서 있다. 욕망의 성취물인 부의 실현은 결국 현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상공간 크립토복셀의 NU Gallery에서 열린  스틸 이미지(부분) 2021 제공: 이윤성, 월간미술 


얼마 전 가상공간 크립토복셀(Cryptovoxels)의 NU Gallery에서는 한국에 기반을 둔 NFT 아트 작가들이 대거 참가한 단체전, <First NFT Art Group Exhibition of Korea>가 열렸다. 4월 5일에는 가상 전시장에 익명의 관람객-아바타 100명이 모여 역사적인 첫 그룹전을 자축했다. 가상의 갤러리와 가상 작품이지만 이는 실재하며 획기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설치미술은 0과 1이 만드는 공간에서 어떻게 미술을 전개할 것인가. 모험가에게 미지의 영역은 가능성이 넘실대는 푸른 바다다. 분명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지만 누군가는 그곳을 향해 기꺼이 돛을 펴고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공간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결론

한국 현대미술의 계보를 통해 설치미술을 발생하게 한 획기적인 사건들을 돌아봤다. 그 원인과 해석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지식 구조의 변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시 방법이 18세기에 이르러 변화를 맞이하였음을 지적하며 그 원인을 지식 구조의 변화에서 찾았다. 한국 설치미술의 계보를 써나가게 한 원동력 역시 근 100년간 지식 구조의 변화에 기인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근현대기의 격동성 만큼이나 미술은 짧은 시간 내에 큰 변화를 이뤘고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정신이 달라지면 소재가 달라지고, 소재가 달라지면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 역시 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라는 고충환의 말처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지만 변화는 아이러니의 임계점이 넘는 순간 사회의 요소들과 함께 맞물려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초연결성이 바탕이 된 새로운 공간, 메타버스 또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흥미와 재미로부터 시작해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실의 지식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관계 규정하기

전시 공간에서 오브제는 주위 환경과 호흡하며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한다. 또한 이를 둘러싼 구성 요소들은 설치된 맥락에 따라 환경과 관계하며 의미를 짓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관객은 다시 전시 공간이 만드는 상황을 근거로 작품의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 공간에서 관계는 꾸준히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전시 공간의 시대별 전개는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단순히 작품에 목적을 둔 닫힌 공간에서, 유동적인 관람 동선을 유도하여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하는 열려 있는 공간으로, 더 나아가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미술관 속에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는 다시 새로운 관계 형성 여지를 남긴다. 설치미술은 변화된 지식 구조를 바탕으로 하나의 미술을 둘러싼 관계를 재정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술관 전시공간의 유형과 그 해석, 대한건축학회지, 대한건축학회, 2010, p.41.


바로, 지금, 여기

설치미술은 완결되지 않고 현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의 새로운 관계 설정하기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설치미술은 시간과 공간에 따른 특정적 미술이 만들고 그것과 부대끼며 변화하고 관객에 의해 해석된다. 이 끝없는 가치 교환은 설치미술이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그 시간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일련의 새로운 과정은 공간과 관계된 모든 것을 지속적인 긴장상태로 내몰아 무엇이 ‘미술'인지에 대해 부지런히 질문하게 만든다. 설치미술의 혁신이 계속되는 한 미술에 대한 질문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현재성, 지속성, 미완결성은 역사적 시도를 계속하게 하고 미술계art world 의 역할과 범위의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종교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예술은 갈래를 세분화하여 카테고리를 만들고, 나누어진 개별 단위들은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별성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연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꿈틀대고, 종교의 비이성에서 벗어난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은 희망과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회귀가 아닌 이전과 다른 것,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것이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그저 지금의 새로움에 집중할 뿐이다.




참고문헌

고충환 (1999). 20세기 현대미술의 변화와 모색/설치미술, 공간의 재구조화. 미술세계, 112-115.

이   일 (1987). [기획특집설치미술1] 현실의 공간, 그리고 공간의 현실화. 미술세계, 34-38.

김남시 (2018). 혁신으로서의 레디메이드 – 보리스 그로이스의‘새로움’개념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제19권 제5호, 57-70.

안소연 (2018). 설치미술의 국제화 흐름 속 1980-1990년대 한국현대조각의 변화.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6, 227-253.

김이순 (2011).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조각 개념과 그 전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2, 36-53.

편집부 (1987). [기획특집설치미술6] 설치미술년표. 미술세계, 70-75.

김달진 (1993). [송년특집1/설치미술 년표] 한국 설치미술 20여 년 소사. 미술세계, 54-59.

이은주 (2020). 1960-1970년대 실험미술과 매체예술에 관한 연구. 현대미술사 연구, 48, 33-65.

김형숙 (2000). 전시에 있어서 재현의 의미.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14, 121-147.


작가의 이전글 넓어지는 아시아, 좁아지는 전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