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첫 주.

by 최미야

첫 주 4일 만근했다. 주 3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말 1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했다. 첫 주를 만근한 소감은, 힘들지만 할 만하다이다. 몸을 쓰는 일이라 고되지만 동료들이 있어서 의지가 많이 된다. 우리는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나와서 매일 같은 얼굴을 보는 건 아니다. 바쁜 짬을 내어 동료들과 스몰톡하는 게 꽤나 재밌다. 그냥 다들 노동하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다들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돈 버느라 고생하는구나, 수고가 많구나, 했다. 오늘은 주말,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오후 5시까지인데도 평일보다 어째 더 피곤한 것 같다. 집에 와서 30분을 그대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밥을 후다닥 먹고, 커피를 사와서 앉아서 글을 쓴다. 정말 힘들고 지쳤는데도 글이 써지는 걸 보면 참, 나도 글쓰는 걸 어지간하게 좋아하나 싶다.


첫 주 일해 보니까 한의원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다. 오늘 과장님이 퇴근하면서 나보고 "액팅은 다 익힌 것 같으니 내일은 차팅하는 법을 가르쳐 줄게요"라고 했다. 그래도 내일 일하면 그다음 날은 쉰다. 일은 빡세지만 주 4일이라 그래도 버틸 만하다. 일단 나는 일하는 모드가 되면 집중하는 편이므로 다른 생각은 안 난다. 아니, 한의원 치료실 일이라는 게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는 타입은 아닌 듯하다. 정말 빡세다. 쉴새없이 환자가 들어오고 나가고, 환자마다 다른 처방이 내려지면 그에 맞는 액팅을 해야 한다. 아, 점심 저녁 시간에 쉴 때 다들 나한테 관심 없는 것도 좋다. 나 혼자 나가서 돌아다니다 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사적인 일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그때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절대, 절대, 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누고 싶지도 않고 알리고 싶지도 않다. 알게 하는 게 싫다. 그냥.


3월 셋째주 주말에 딸을 드디어 만난다. 그날 딸이 처음 우리집에 오는 날이다. 난 냄비 세트와 그릇, 컵, 수저 등을 전부 다 구비해 놓았다. 언제든 딸이 오면 밥을 해 줄 수 있게. 밥솥은 엄마가 이사 기념으로 사놓았다고 전화가 왔다. 고마웠다. 지지고 볶고 끓이고 해서 맛있는 밥상을 차려줘야지. 금요일 일요일 일하고 토요일에 쉬니까, 토요일은 딸과 온전히 놀 수 있다. 떨린다. 딸이 내 집을 처음 보는 날인데,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분주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벌써 매트리스에 커피를 쏟아서 얼룩이 생겼다-웃음) 난방도 따뜻하게 켜놓고 딸을 기다려야지. 신난다.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을 때, 내 각오는 남달랐다. 그 무엇이든 잘 적응해 내리라 결심했었다. 지금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뤄내 나가는 중이다. 환경이 너무 단번에 바뀌어서 정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다. 출근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휴일에는 산책도 하고. 혼자 집에 있다. 정신없이 노동을 할 때는 내가 필멸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죽음을 직면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기 위해서 쓴다. 한숨 돌리기 위해 쓴다. 내가 여기에 지금 있다는 걸 온전히 느끼기 위해 쓴다. 뭔가 깊이 있는 사색은 못하지만 그래도, 난 쓸 때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낀다. 난 무엇을 위해 버티는가? 왜 버티는가? 이 힘든 삶을, 이 고된 삶을 왜 계속 살아가려 하는가? 난 보통 딸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밑바닥을 파보면 딸은 내 삶을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내 삶의 최고의 기쁨이자 사랑이긴 하지만, 내 삶의 동력을 움직이는 존재는 결국 나. 내가, 이 내가 비로소 이 생을 긍정하고 살아갈 만한 것으로 생각했을 때만이 계속해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 의지. 내 영혼. 내 몸. 나의 인식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예민한 사유. 그것들만이 날 살게 할 것이다.


뱀의 혀처럼 낼름거리는, 쏜살같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난 절대 이것을 거스를 수 없다. 절대 법칙. 필멸.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이 삶. 난 일하면서 산업혁명 때의 노동자까지 떠올렸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다. 근데 오늘 추운 아침에 출근하다가 바깥에서 옷을 파는 한 늙은 남자를 보았다. 그래, 저 사람은 추운데 밖에서 옷 파는데 나는 따뜻한 데서 일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걸 싫어하는데, 문득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래, 세상에는 나보다 못한 컨디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저런 불만, 불안들을 털어내고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사할 것. 또 감사할 것.


한없이 고독해져가. 또는 한없이 너를 바깥으로 던져. 또는 한없이 너를 꺼내. 그러고는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야. 천천히, 대체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간을 붙잡아 너의 것으로 만드는 거야. 다 성공할 수는 없겠지. 실패도 있겠지. 그래도 버텨. 존나 버텨. 그러다 보면 또 훅 흘러간 시간이 널 다르게 변신시켜 놓을 거야. 출근 첫 주를 마치고 느낀 소회가 길다. 그냥 존나 힘들다. 존나 빡세다. 근데 또 버틸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원한 건 바로 이런 거였으니까. 그 방황 속에서 힘들어했던 시간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 존나 버텨. 그냥 버텨.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 이겨내란 말이야. 부디.


죽음같은 잠에 빠지러 간다.

오늘도 안녕.

오늘, 안녕.

내일 봐.

새 아침을 반겨줄게.

환한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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