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 성장은 탱고의 까베를 편하게 만들어줄까?
'소중한 경험'이라고 하는 김형경 작가님의 독서성장에세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던 중에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립되고 지혜로우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P111)
이 책은 개인적 성장을 돕는 독서모임을 통해서 얻은 통찰들을 소설가인 김형경 작가님이 에세이 형식으로 엮어낸 책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주제는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느냐에 관한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사람이 인간적인 성장을 했을 때의 모습을 위의 문장처럼 잘 드러내는 것은 없는 것 같아 인상 깊게 남았던 문장입니다.
자립, 지혜로운 행동,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의 축 위에 올바로 서고, 상대방과의 지혜로운 텐션과 컨넥션을 유지하면서 상대편도 또한 자신의 축 위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춤을 춘다는 탱고의 초급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떠오르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연결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타인과의 좋은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대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공감 능력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린 깊이만큼 만들어 가지게 된다. 자기 내면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공감 능력은 그러므로 자기 성찰 역량과 비례한다. (P53)
이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얘기하는 문장들을 만날 때면 줄을 긋고 감탄하게 됩니다. 더욱이 내가 쓸 수 있는 문장보다 훨씬 더 정제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더욱더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이런 시각으로 나는 항상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떠올리면서 '수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우선 먼저 나 자신을 닦아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난 이후에야 제가를 할 수 있고, 그다음 단계를 나아갈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내 맘 속에 올바른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내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슬로우의 욕구의 단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계를 마무리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탱고의 걸음을 생각해도 잘 걷고 난 이후에 다른 피구라(탱고의 춤추는 패튼)를 연습한다고 하면, 몇 년 동안 걷기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자연의 진화단계도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완벽하게 구분되게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단계는 다른 단계와 공진화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내가 제대로 선 이후에야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 섰는지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재확인하면서 나의 자세를 바로 잡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나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만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함으로써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많이 차단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탱고를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까베세오(=서로 춤출 상대를 제안하고 승낙받는 과정)입니다. 스스로의 춤에 대해서 아주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안을 하는 것을 미안해합니다. 오히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커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에 대한 불안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 '소중한 경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감 있게 거절당하더라도 드리대고 많은 춤을 춥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조심스러운 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1. 나는 외모에 대해서 굉장히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꾸미는 것 자체를 포기했었고, 머리도 많이 빠졌고,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이 나의 모습을 볼 때 끌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내적충실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아는 사람들은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성실성과 준비성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청을 건네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온갖 변명으로 시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강합니다. 내가 신청했을 때, 거절당하는 것을 인간적인 거절로까지 과장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신청함으로써 상대편에게 부담을 지울 수도 있고, 나와의 춤추는 시간이 상대편에게 힘든 시간일 수 있기 때문에 신청을 꺼린다고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내가 신청하는 것과 상대편이 받아들이는 것은 동일한 정도의 선택권이고, 나의 선택과 상대편의 거부가 동일한 수준의 사건으로 판단하고 시도를 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고백은 내 마음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는 상대편의 마음이므로 어느 쪽도 서로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가벼운 춤 신청도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용기는 무기력이나 절망감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등 많은 철학자가 용기를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P174)
탱고에서의 까베를 편안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에 대한 단단한 확신과 거절과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는 성장을 내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독의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작가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었다고 얘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죽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성장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좋은 삶이었다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