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재 어느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에 놓이는경험
홍대 주변에는 많은 밀롱가가 있습니다. 아시아의 아르헨티나, 한국의 부에노스아이레스라 불리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일주일 내내 다양한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 또는 탱고 음악의 한 장르를 의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홍대 앞입니다. 탱고를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1년 반이 넘어가고 꾸준히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밀롱가를 다니기 시작합니다. 요즘 밀롱가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던 사람도 많고, 잘 추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밀롱가라는 곳을 가게 되면, 넓은 플로어에 주변을 둘러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습니다. 예약을 한 사람들이 앉는 자리도 있고, 혼자서 온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도 있습니다. 음악을 트는 DJ가 있고, 조명은 조금 어두운 편입니다.
입장하는 곳으로 가면 닉네임과 돈을 입금하는 곳이 있고, 등록을 하고 난 이후 신발을 갈아 신고 올라가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이 보통은 있는 것 같습니다. 춤추는 남자를 땅게로, 여자를 땅레라라고 하는데, 보통은 '로'와 '라'로 줄여서 부릅니다. 가벼운 음식을 제공하는 데, 음료와 음식을 가지고 자리로 가서 먹으면서 춤추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춤도 춥니다.
음악이 나오는 순서는 보통 탱탱발, 탱탱밀이라고 하는데, <탱고 두딴따, 발스 한딴따, 탱고 두딴따, 밀롱가 한딴따> 가 기본적인 흐름입니다. 여기서 '한 딴따'라는 것이 음악 3~4곡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춤신청을 하고, 승낙을 하고 난 이후에는 거의 10여분을 같이 춤을 춰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탱고에서는 춤 파트너 신청과 승낙이 쉽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 춤을 추러 나갔는데, 그 사람과 전혀 맞지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돌아오지도 못하고 10여분을 난감하게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두려워할 만큼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겁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의 춤신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자는 멋있거나 잘 추거나 둘 중 하나는 갖춰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결국 내가 10분을 버티기에 힘든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처음 가는 밀롱가에서는 내가 추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춤을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다들 너무 멋지게 잘 추는 것 같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패튼들을 보다 보면 더 춤신청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게 되는 게 초보 땅게로의 애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같이 춤을 배우기 시작했던 동기들의 번개로 밀롱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3~7시까지 AM이라고 하는 Alternative Music 일 것 같은데, 가요를 포함한 다양한 음악으로 탱고를 추는 시간이고, 이후 7~11시까지는 전통 클래식 탱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곳이었습니다.
똑같은 돈을 내고 전후반을 다 경험할 수 있어서, 5경쯤 들어갔습니다.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셨던 분의 조언에 따라서 밀롱가에서는 남자들이 입는 탱고바지를 항상 챙겨서 입어야 한다는 조언에 충실하게 탱고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동기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는데, 몇 명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고, 우리 기수의 강습에 도우미를 해 주셨던 분도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옆테이블에 있는 다른 동기분이 있어서 한 딴따를 추고, 동기에게 신청을 해보려 하는데, 서로 얘기를 너무 열심히 하고 있어서 신청을 못하고 어영부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추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또 다른 동기 한 명이 와서 앉았습니다. 약 2딴따의 시간 동안 우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3명이 나와의 눈 마주침을 피하고 있다는 느낌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나랑 춤추는 것이 예의상으로도 싫을 정도인가? 아니면 나에 대한 다른 소문이 있는 건가?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있는데, 또 다른 동기들이 오면서 3명 중의 한 명이 새로 들어오는 분과 춤추자고 제안하고 나갔다 와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면서 나가고, 다른 한 분도 몇 딴따를 추고 난 이후 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어제의 밀롱가 경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약 20분의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같이 술 마시고 놀던 동기인데, 나와 춤을 추지 않기 위해서 눈을 피하는 경험'을 얘기했던 어떤 쌤의 얘기가 바로 나의 얘기가 된 것 같고, 나름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피해야 할 정도면 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밀롱가에는 '블랙'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악취, 구취, 비매너 등으로 소문이 돌아서 춤추기 위한 까베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당사자는 모르고 주변 사람만이 아는 리스트라서 내가 그에 포함되었는지 아닌지는 내가 밀롱가에서 까베가 잘되는지 안되는지의 비율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친목도모와 술자리 관계를 통해서 우호세력을 만들어둬야 탱고 사회에서 모르고 봉변당하는 일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로 다른 남자 동기들도 오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춤을 추게 되면서, 어색했던 20분은 글소재로 남겨두고 나머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친구들과 모여서 다른 테이블에 많이 앉아있었고, 그들과의 안면으로 까베가 한 번씩은 되면서 점점 쉬는 시간보다는 춤을 추는 시간이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탱고가 아닌 발스나 밀롱가라는 장르의 음악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춤추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결국 6딴따 중의 3~4딴따를 추는 것이 최선인데, 보통 2~3딴따를 췄던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수업에서 만난 분을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한딴따 추고, 오랫동안 같이 수업을 듣고 있는 분이 까베가 안된다고 손수 찾아와서 춤춰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한 딴따를 추기도 했습니다.
동기 중의 한 명은 지난번에 췄을 때, 훨씬 편하게 춤을 출 수 있었는데, 왜인지 이번에는 자세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져서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척봐도 경력이 되어 보이는 분과 추는데, 앞의 분과 가벼운 접촉을 몇 번 하게 되어서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딴따도 있었습니다. 한 분은 내 축이 굉장히 잘 서 있어서 앞으로 기대된다는 칭찬을 해주신 분도 있고, 바디는 완전 탱고 바디인데 잘 사용을 못하고 있다고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리더가 도저히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의 장식을 즐겁게 하면서 추시는 분도 있었고, 이 분은 다음에도 신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러운 분도 있었습니다.
사실 한곡이 끝나고 나서, 나의 춤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직접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해서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인 관계의 '라'들에게 나의 춤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춤에 대해서 100% 만족하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더 자유롭게 춤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제의 밀롱가를 마무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주에 들었던 심부축에 대한 얘기와 기다림과 비움으로서 리드한다는 말은 체화되지 않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피구라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으로 자괴감도 들고, 축과 아브라소에 어마어마하게 큰 변화가 없다는 부분에서 실망도 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