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 리더와 팔로어의 관계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배웠던 덕목이 탱고에서도 나타날 줄은?

by Mooony

새로운 탱고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탱고 수업과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수업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제 들었던 수업은 왠지 여러 가지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탱고에서는 땅게로(탱고를 출 때 이끌어가는 리더)가 춤을 이끌고, 땅게라(탱고를 출 때 이끄는 것을 따라가는 팔로어)가 리더의 신호를 읽고 같이 걷는 춤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더 자유로운 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합니다. 리더와 팔로어라는 기본적인 용어는 있지만, 이 리딩과 팔로잉은 때에 따라서 그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역할 바꿈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상대편의 의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의도의 캐취가 '상대편에 대한 주의집중(attention), 또는 경청'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리더가 자기가 모든 춤을 주도하지도 않고, 팔로워가 항상 주도하는 리더에게 따라가지도 않고, 어떤 상황에서는 주도권이 팔로어에게 갈 수도, 다시 리더에게 돌려줄 수도 있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고 몸으로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 그 상대편이 하는 말을 서로 듣고, 반응할 때, 그 춤은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이 춤에 공통된 사인을 주는 음악이라는 심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듣고 있는 음악은 정형화된 멜로디를 통해서 여기는 강하게, 여기는 부드럽게, 여기는 악센트를, 여기는 느리게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줍니다. 이 음악을 같이 듣는 리더와 팔로어는 부드러울 때는 팔로워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고, 강한 임팩트가 있는 음악에서는 리더에게 주도권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첫 번째 덕목은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상대편의 단점을 지적해서 대립관계가 된다면 상대편으로부터 어떠한 좋은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두 번째 덕목이 "상대편의 장점을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칭찬하라"라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리더가 팔로워에게 꿀을 얻고 싶다면 상대편이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힘으로 이끄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편의 장점을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칭찬하라는 것은 역시, 상대편이 잘할 수 있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 즉 주도권을 넘겨주고 내가 따라가는 시간을 통해서 '당신 대단하다. 멋있다. 아름답다.'라는 칭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팔로어가 가는 길을 따라만가고 있으면 서로 간의 대화가 아닙니다. 간혹 나는 당신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표현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적극적 개입일 것이고, 잠시 주도권을 가져와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고 임팩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수업에서는 리더의 주도권을 최대한 제한하고 팔로어에게 주도권을 주는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음악이 개입되면 장단완급고저라는 부분에 의해서 서로의 이해를 공유하는 춤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싱어게인4에서 이승기가 부르는 음악에서 고저와 악센트를 느꼈습니다.)


리더와 팔로어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어제의 수업을 되새기면서 아침에 음악을 듣고 운전을 하는데 여러 가지 비유와 예시의 생각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춤을 추게 되었을까? 왜 춤에 빠져들까? 잘 추는 춤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어디까지 시간을 할애해서 더 나아지려고 하는가?


개별 단위로 생각을 해보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인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자연선택의 기준이 DNA로까지 낮아져서 인간의 의식과 인지에 대해서는 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이성으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안위와 행복인 것 같다는 말에는 대부분 동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식화한다면 세상은 나와 타인과 주변이라는 3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3가지 요소가 춤이라는 요소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춤을 추게 된 것은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가정을 해봅니다. 나라는 자아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법은 타인이 나를 인정해 줄 때이고, 춤이라는 것은 상대편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내가 나로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소중한 두 세계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데, 그곳에 음악이라는 배경에 주변사람들이라는 상호작용 매개체까지 있는 곳이 밀롱가이고, 거기서 나누는 춤은 나의 존재론적 인식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너무 나간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어제의 수업은 내가 중요한 만큼 내 앞의 사람도 중요하고, 우리는 서로가 자유롭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춤을 추는 것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서로를 살피고 때로는 상대편의 의견에 맞추고, 때로는 나의 의견을 주장하면서 음악이라는 약속된 심판의 판단을 따르면서 아름다운 춤을 춰야 한다는 결론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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