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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Mar 28. 2023

우리 예삐가 사준 마후라

엄마와 여동생

우리 집안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꼬야", "예삐"라는 단어들이 있다.


"꼬야"라는 단어는 여동생들이 내 딸에게 가르쳐준 단어이다. "고모"라는 단어는 왠지 "이모"라는 단어보다는 사람들에게 덜 친숙하다. 요즘 사회가 모계사회화 되어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고모"라는 단어가 가지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줄이고 싶었던지, 딸애가 어릴 때 "큰 꼬야, 작은꼬야"로 명칭을 통일해서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딸애는 내 여동생들을 "꼬야"라고 부른다. 고모보다는 꼬야라는 단어가 애칭 같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우리 집안에 정착한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떡볶이 집이 있는데 그 집의 이름이 "(먹고 갈)꼬야 떡볶이"이다. 단어들이 이렇게 얽히고설킨다.


예삐라는 단어는 작은 이모댁에서 처음 들었다. 작은 이모댁에는 딸이 다섯이 있고, 사촌 누나들이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아서 나에게는 5촌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 넷째 누나가 조카들 중 첫 번째 조카에게 교육을 시켰다. "나는 예삐이모다. 내가 누구라고?" "예삐이모" 그렇게 해서 넷째 누나는 모든 조카들에게 "예삐 이모"가 되었다.


관습이라는 것이 이렇세 쉽게 만들어진다. 마케팅에서 선점의 효과도 중요하고, 이슈와 단어를 선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넷째 누나는 마케팅 쪽으로 일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모댁의 넷째 누나가 그렇게 예삐 이모가 되는 일을 재미있게 지켜보다가 우리는 "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라는 단어들의 느낌이 합쳐진 "예삐"라는 단어를 집안에서 사용하게 된 것 같다.


지난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 어머니는 교회에 가기 위해서 전날부터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나에게 입은 옷차림에 대해서 물어볼 때가 있다. "오늘 입은 옷 어때? 고상하고, 여성스러워?" 이런 느낌으로 물어본다. 그날은 항상 묻던 방식이 아니라 "오늘 옷 어때? 오늘은 우리 예삐가 사준 마후라 하고 갈꺼야."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예삐는 막내 동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머니는 "예삐"라는 단어는 손녀에게 쓰는 말이지, 딸에게 쓰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막냇동생이 사준 마후라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느낌을 그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아서, 웃으면서 기억을 했다. "옷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하고 그날의 루틴은 끝이 났다.


근데, 그 한 문장은 막내 동생에게 언젠가 꼭 전달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본인의 말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본인에게 좋지 않은 공격적인 말에만 깊은 생각과 재삼 곱씹어보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 즉흥적이고, 솔직하다. 그래서, 쓰지 않던 "예삐"라는 단어를 사용한 일요일 아침의 말을 여동생에게 전해주면 아주 즐거워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제저녁에 어머니의 전화통화에 맞춰서, 여동생에게 일요일의 에피소드를 얘기해 줬더니 크게 웃으면서 좋아했다. "예삐"라는 단어에 대한 큼직한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 오랫동안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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