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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pr 30. 2023

백년동안의 고독(독서모임)

의견의 다양성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올해 초에 내가 세웠던 계획에서는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글을 썼어야 했는데, 바쁘고 힘들어지면서 소홀해졌다. 주말에도 계속되는 일이 있었고, 어제는 몸까지 아팠다. 그래도, 좋은 독서모임이 있어서 참석했고, 가고 올 때는 힘들었지만 뭔가 많은 것을 챙긴 것 같아서 좋았다.


G.마르케스가 198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으로 유명한 "백년동안의 고독"에 대해서 읽고, 

총평, 기억에 남는 장면과 인물, 제목(백년동안의 고독), 마술적  리얼리즘, 마콘도는 왜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을까?, 고독과 외로움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모든 책을 읽으면서 문장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읽고 나면 정말 조금만 머릿속에 남아있듯이 독서모임에서의 얘기들도 남기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기억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적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공존"을 나타내 보여주는 내용에 대해서, 추상화와 구상화로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에 대한 나의 이해가 편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가 자신의 추상화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그 사진이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크기도 다르고, 오른쪽면이 보이지도 않고, 등등) 이 세상의 사건과 사고는 일어나지만, 그 사건과 사고를 있는 그대로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사건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모든 부분 부분을 설명하고 해석한다고 해서, 이해를 더 넒힐 수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 사건에서의 이미지를 마술처럼 남김으로써 더 그 사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는 나이가 들어서 미쳐버렸다. 그 미친 사람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귀신과 소통하고,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인생에서의 잘못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인식은 뇌의 해석이라는 말이 있다. 그 해석을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과학적으로 해석할 것이고, 초현실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초현실적으로 이미지화해서 해석할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폭로하는 역사적 소설"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굉장히 색다른 해석이 2가지가 있었다. 마콘도에서 일어나는 바나나 공장과 정치적 전쟁은 식민지 수탈과 연계가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모든 사건 사고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 든다. 나는 이 책에서 나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개성과 행동양식, 끊임없이 연결되는 관계와 관계, 정글의 나무들에 둘러싸여지듯이 캐릭터들에 둘러싸이는 사건과 사건들이 재밌고, 놀라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확실히 나 스스로가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관에도 의문이 생기고, 내가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이 책은 수수께끼를 많이 던진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에 대해서 한 번씩 읽을 때마다 답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큰 주제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에 대한 얘기였다. 외로움은 부재, 결핍에서 온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했다. 주변사람들로부터의 떨어짐이 외로움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고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고독은 나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만나려고 노력한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에 어울리게 하는 동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집단에 속하게 되면,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에서는 탈출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군중 속에서도 나는 나 그 자체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사회적 규범과 무리의 규칙에 따라야만 하고, 그 규칙에서 어긋나는 행동에는 제재가 뒤따른다. 근원적인 고독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을 나와 함께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나는 영원히 혼자가 아닌 고독한 상태에서의 탈출이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의 생각거리는 삶의 목적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에는 뭔가를 해야 하는 소명이 있는 것인가? 자신의 소명을 찾아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손발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인생에 대한 소중함은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특별한 목적이 있는가? 리차드 도킨스가 얘기했듯이 우리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태어난 생존기계인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 나의 의지가 아닌 시간, 공간, 역사, 사람들의 씨줄과 날줄에 의해서 어느 순간 여기에 있고, 지금 있는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책에서 우르술라가 인생을 살아낸 것처럼. 미쳐버린 남편, 내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들도 내가 키우고, 내 자식의 죽음을 살펴보면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나가는 것이다. 눈이 먼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말하지 않고, 내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책의 제목에 대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백년은 마콘도가 생겼다가 사라진 기간이다. 부엔디아는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 책의 내용은 부엔디아 가문의 7대에 걸친 얘기이다.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것은 "백년동안의 고독=인생"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백년동안의 고독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에게 "고독해? 걱정하지마. 다 그래!"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가 많은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알이즈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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