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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un 09. 2023

운명에게 허락받아 소명을 이룬 사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고

교보문고 베스트 서적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서 읽거나, 책에서 언급한 좋은 책을 따라서 읽거나, 저자가 마음에 들어 찾아서 읽거나, 읽을 책을 찾는 과정은 다양하다.


나는 요즘 물리학, 천문학 관련된 책을 읽다가 수학에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아는 수학은 4칙연산, 함수, 미적분 중의 미분, 통계, 방정식 등이다. 그런데, 수학의 천재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남들이 모르는 수의 규칙을 알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어떤 사고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수학의 쓸모, 미적분의 쓸모를 읽어봤는데, 전문 지식을 갖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써놓아서 자신감을 가지고 또 다른 책은 없을까를 찾다가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을 찾게 되었다. 책의 추천사가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님이었다. 하룻밤만에 책을 읽고,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말에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추천사 중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읽어보기를 권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 책의 출판일을 살펴보니 1998년 5월 19일에 1판 1쇄가 발행되었다. 이후 2003년 2월에 2판이 나오고, 2014년에 3판, 2022년 7월에 4판이 나왔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4판의 2쇄 본이다. 판이 바뀐다는 것은 내용이 수정되었다는 것으로 들었다. 쇄가 바뀌는 것은 완판 후 다시 찍었다는 것이고, 이 책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최종적으로 정리한 1994년에서 5년이 지난 후에 출판되었다. 이후, 여러 가지 내용에 변형이 있을 정도로 수학의 학문적 내용이 바뀐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된다.


1993년에 대대적인 홍보가 되었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증명을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정말 영화를 한편 본 것처럼 생생하고, 극적이면서도 짜릿했다.


사실, 사는데 수학은 크게 의식되지 않는다. 수학의 쓸모와 미적분의 쓸모에서 알게 된 것처럼 내가 모르는 많은 기계와 시스템, 프로그램들에 이미 수학은 숨겨져 있지만, 실제로 그 수학을 의식하면서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 것 같다. 음악은 의식적으로 찾아서 듣고, 문학은 토론과 의견을 주고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누군가와 수학에 대해서 얘기하고 학문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경험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다가 잊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수학에서 한번 "참"으로 증명된 것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첫 번째 증명은 기억이 된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이 책(P48)에서 나왔던 말을 인용한 것일지 모르겠다. 물리학은 가설을 세우고 현상을 관찰하여 가설을 수정하고, 또 다른 수정을 통해서 가설이 점점 법칙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은 다른 발견에 의해서 통합, 흡수, 합병,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의 증명은 불멸이다. 유한을 사는 인간이 불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수학에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다. 이 말을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들었다면 나는 수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책은 앤드류 와일즈라는 한 수학자가 10살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다가 그 꿈을 40대에 이루는 판타지 소설 같은 내용이다. 페르마의 정리는 350년 동안 증명되지 않은 수학의 최고의 난제 중의 하나이고, 수많은 세기의 수학자들이 증명하기 위해서 도전하다가 실패를 거듭한 문제였다.


예전에 아인슈타인의 "E=mc2" 라는 공식을 통해서 물리학의 역사를 설명했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E(에너지)의 발견과 역사, "="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m 질량에 대한 설명, c 빛의 속도에 대한 얘기들로 물리학의 역사를 알 수 있었듯이, 이 책은 페르마의 정리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학의 전반적인 역사를 설명해 준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의 상세하고 쉬운 설명과 유려한 문체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이 무척 많다. 하지만, 가장 하이라이트는 앤드류 와일즈의 몰입이었다. 추천사에서 정재승 교수의 하룻밤에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천재라 불리는 석학들의 집중력은 남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앤드류 와일즈는 페르마의 정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8년의 시간을 몰입했다. 8년간을 하나의 문제만을 생각하고, 그 문제의 해결방법만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몰입은 어떤 정신력과 준비가 되어야 가능한 것일까?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책으로 알게 된 몰입(=flow)이 한국의 황농문 박사의 몰입으로 연결되다가 그 몰입을 8년이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의 사례를 책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놀랍고 부러웠다. 8년의 몰입을 통해서 150페이지에 이르는 수학의 증명을 해내고, 그 증명에서 조그마한 오류로 다시 1년의 고통을 받는 순간까지 정말 각본 없이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같았다. 최종적으로 증명을 위해서 고통받는 앤드류 와일즈에게 공감을 넘어선 감정공유를 하고, 마침내 증명을 끝내고 그 환희에 꿈인지 생시인지를 몰랐다는 대목에서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목표라는 것을 가질 수 있고, 그 목표를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것이 350년간 미제였던 문제의 해결이었다면, 그 해결을 위해서 자나 깨나 내 온 존재를 던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 목표를 달성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경이에 가득 찬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그 기쁨과 환희는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 책은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무언가에 의기소침하고, 기분이 다운되었을 때, 앤드류 와일즈의 그 찬란한 순간을 읽는 것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다시 시도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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